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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의 그리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겨울이 되면 손바닥만한 구멍가게에서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군고구마 통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앉아있던 어머니생각에 가슴이 아파 온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심정 안다더니」두 아이의 어미가 되고 보니 해가 갈수록 부끄러움이 더해진다.
나의 성격이 어려서부터 하고싶은 일은 꼭 해야만 했었다. 책을 사고싶으면 사고싶은 그때 사야만했고 선생님이 내일까지 가져오너라 했으면 내일에는 가져 가야만했다. 그것이 안되면 책가방을 들고 집 앞에 앉아서 줄 때까지 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붓글씨를 배우고 싶을 때도 단식으로 겨우 어머니의 허락을 받았지만, 두 달도 못 가 그만두었다. 국수를 하게되면 가루음식을 싫어하는 딸을 위해 따로 밥을 해주셨고 반찬투정도 많이 했다.
아버지와 다투실 때는 당돌한 소리까지 했었다.
『아버지랑 살지마·나 시집안가고 엄마랑 살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속 썩여준 미 운 자식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우리들은 어머니를 너무 고생시켜 드렸고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시간에도 어머니는 가게를 보았다. 암이 불치의 병이라지만 우리는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팔다가 남아야 먹으라고 주시던 고구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먹어보질 못했던 고구마, 아니 먹으려 생각도 안 했지만, 먹게 된다해도 목이 메어 넘어가질 않을 것 같다. 이젠 군고구마 통마저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의학도 발달되어 좋은 약도 많이 나오고 있는 지금 만약 살아 계시다면,『우리 사위』 『우리 며느리』 『우리 손자』하셨을 어머니.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싶은 어머니시다. <대전시 동구 가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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