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유권자들 정치관심 적다|한국여성과 선거의식(정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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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족법 개정이나 각계에 뿌리깊은 여성차별 등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많은 우리 나라는 유독 여성문제에 있어서만 후진국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선의 열기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면서도 막상 정당의 공약가운데 여성문제는 찾기 어렵다. 유권자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이번 선거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학계·여성계·주부의 정담으로 여성 유권자의 선거의식을 살펴보았다.
홍숙자=국회진출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4년 전에 비해 여성은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어요. 각 정당의 전국구 후보라든지, 또 각 정당이 선거공약에서 내세운 여성문제에 대한 비중이라든지.
백경남=전국구 후보수로 본다면 지난번에 비해 줄어든 셈이지요. 특히 야당 쪽은 전멸이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여성계의 가장 큰 이슈로 지난해 미결로 넘어온 가족법개정에 대한 것도 공약에 넣고 있는 정당이 없지요. 다만 여성부를 만들겠다든지,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구체성 없는 공약이 있긴 합니다만.
민정애=저 자신도 반성하고있는 점인데요. 여성이 스스로의 문제에 적극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인 부당한 차별을 인식하면서도 막상 이의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법으로 꼽히는 정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홍=정확한 지적입니다. 75∼85년의 유엔 여성발전 10년 동안 우리 나라 여성들도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화는 상당한 진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주체의식도 갖지 못하고, 더우기 정치의식화는 전혀 되어있지 않아요. 정치란 위대하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가 정치란 것을, 그리고 그렇게 참여함으로 해서 스스로의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제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에서도 회원들이 자신이 낸 회비가 어디에 쓰이는가에 대한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이 같은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참여의식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 자신도 이 좌담회에 나오기 전까지 우리선거구에 어떤 후보가 나왔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여기에 오기 전 잠시 유세장에 들렀는데, 그 열기에 놀랐습니다.
백=올해가 해방 40년이 아닙니까..사실 우리의 민주적 자치능력을 세계에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눈도 우리에게 쏠려있어요. 최근의 선거열기로 보아 4년 전에 비해 민주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발전했다고 느껴집니다. 그토록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국민 스스로가 발전해온 것이라 생각하니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같은 발전 속에서도 아직 여성의 의식은 그대로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와요.
홍=여성단체가 지금부터 과감한 변신을 해야 한다고 주상하고 싶어요. 꽃꽂이 강의나 파출부 알선의 차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시민교육과 정치교육을 실시해야해요. 그래서 무서운 압력단체로 클 수 있어야 제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지요.
민=사실 유권자의 반수 이상이 여성이고, 이 여성이 모두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면 가족법개정 같은 것은 벌써 이뤄졌겠지요.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에 여성 유권자는 어떤 인물에 투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홍=우선 특권의식을 가지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에겐 찍지 말아야 합니다.
백=정치적으로 철새였느냐 아니냐는 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선거에서는 개인보다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그 정당원으로서 지금까지 정치소신이 한결 같았느냐는 것이 개인적인 채점기준이 된다고 봅니다.
홍=그런데 여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남성후보에게 투표하느냐는 자세에서 여성 스스로 후보가 되어 표를 얻어야 한다는 차원에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여성 스스로의 문제는 남성이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자신이 풀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려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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