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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 출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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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호 일본 경영잡지 일경비즈니스의 「기업성장과 경영자 학력과의 관계도」조사는 흥미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결론부터 소개하면 성장기업일수록 동경대 출신의 중역수가 적고, 그 수가 많은 기업일수록 쇠퇴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동경대」라면 일본의 관계, 산업계를 지배하는 「간부후보생 양성소」라고 할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초일류급 국립대학이다.
우선 동경대생 한명에게 돌아가는 국비 부담액만해도 연간 약4백8만엔이나 된다. 우리 돈으로 1천3백만원이 넘는 액수다.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하는 이 혜택은 일본 제2의 명문인 교토대의 1·2배에 상당하며 사립대의 20배에 달하는 「은전」이다.
바로 그 국비 수재들이 일본 기업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는 얘기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나 일경비즈니스지는 최근 10년간「상장」기업중 매상고 신장율 베스트50사의 통계에서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기업들의 생소한 이름은 여기 다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베스트 성장회사는 중역 14명 가운데 동경대 출신은 겨우 1명 정도였다.
또 다른 베스트 성장회사의 중역12명 가운데는 동경대 출신이 아예 한사람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베스트10 가운데 이런 회사가 4개사나 되었다.
그나마 경영에 참여한 몇몇 동경대 출신 중역들은 대부분이 인사, 총무, 경리와 같은 관리부분을 맡고있었다. 영업이나 개발등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야전」이나 「작전」부문엔 동경대 출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었다.
이것은 바로 첨단산업사회의 기업이 요구하는 인간형이 어떤 것인가를 암시해주고 있다.
동경대 출신의 우수성은 흔히 리스크(모험+위험) 회피 능력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첨단산업들은「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비수재형의「인간」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오늘의 기업은 생리적으로 벤처(모험)에 익숙해야하며 그것에 둔감하면 성장권에서 탈락하고 만다. 1985년판 『일경 벤처 비즈니스정보』라는 책을 보면 1천6백97개사의 벤처기업중 동경대 출신 사장은 겨우 59명이었다. 1백명중 한명 꼴이다.
이를테면 동경대 출신들은 학생시절에 마치 지식을 빨아들이는 기계처럼 공부에만 몰두하며 모든 정력을 쏟아 버렸다는 것이다. 정작 사회를 일으키는 일에 참여할 때는 정신적 활력이나 신선감을 잃어버린 뒤다.
일본 학계에선 『교토대는 되는데 동경대는 왜 안되나』하는 풍자조의 속담이 있다. 바로 「노벨상」얘기다.
그것도 역시 「융통성 없는 공부벌레」와 「담론풍발의 여유를 갖는 학생」과의 차이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나라 얘기들이지만 새겨보면 그리 먼 일들이 아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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