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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7원 내리려고 그 난리? 유통업계 최저가 경쟁 속 빈 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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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달 전 국내 유통업계는 유례없는 가격할인 대결로 들썩였다. 지난 2월 18일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소셜커머스 쿠팡을 콕 찍어 “이마트 매장과 이마트몰(온라인) 양쪽에서 생활 필수품을 쿠팡보다 싼 최저가로 팔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첫번째 주자로 ‘하기스 매직팬티 기저귀’를 내세우며 매주 목요일에 최저가 품목을 계속 추가해 나가겠다고 했다. 쿠팡도 “우리는 더 싸게 팔겠다”고 대응했고 롯데마트·티몬·위메프·G마켓 등도 줄줄이 경쟁에 가세했다.

가격 인하 → 소비자 혜택 제한적
줄어드는 이익 제조사에 전가 우려
억지 할인보다 아이디어 경쟁을

그로부터 한달여. 경쟁은 초반만큼 치열하지 않다. 이마트는 일주일 주기로 분유(2월23일) 여성용품(3월 3일) 커피믹스(3월 10일)를 최저가 상품을 내놨지만 그 후 2주 째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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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최저가 경쟁에 더 불이 붙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격 경쟁이 오래오래 지속돼 유통 주체들에게 큰 혜택이 될 지는 상당한 의문이다. 소비자부터 보자. 이마트 하기스 기저귀의 개당 가격은 2월18일 309원에서 3월24일 현재 302원으로 7원 떨어졌다. 쿠팡에선 개당 301원으로 1원 더 싸게 판다. 다른 품목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비자 살림에 큰 보탬이 될 정도는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당장 제조업체들은 “아직까지 이마트나 쿠팡 등이 마진 축소 부분을 제조사가 부담하라는 요구는 없다”면서도 “할인 품목이 추가되고 경쟁이 장기화될 경우 결국엔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A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사회가 투명해져서 대놓고 단가인하를 압박하진 못하더라도, 다른 차원의 돌려막기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 마진을 만회하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B업체 역시 “마트가 유통채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80%로 커지면서 예전보다 더 힘이 세졌다”며 “유통사가 최종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우리와 (가격할인에 대한) 합의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제조사가 막대한 자금과 연구개발 역량을 쏟아 개발한 신제품들도 상대적으로 홍보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도 제조사에겐 골치다. 유통사들이 원하는 건 제조사의 간판 제품이기 때문이다. 유통 업체들은 제조사 별로 유명한 ‘미끼상품’을 이용해 소비자의 방문을 유도하고 이것저것 다른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리점이나 동네슈퍼는 더 갑갑하다.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에 비해 마진을 포기하면서까지 물건을 싸게 납품하거나 판매할 여력이 없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또 가격 경쟁을 이어가려면 대형마트나 온라인몰도 적든 크든 마진을 포기해야 하고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유통업체가 어려워지면 소비자 가격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고, 가격 정책에 대한 소비자 신뢰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번 가격 경쟁은 온라인을 강화하려는 이마트의 마케팅이 촉발했다. 온라인몰을 친숙하게 이용하는 20~30대 젊은층이 많이 찾는 상품을 소셜커머스보다 더 싼 가격에 팔아 고객을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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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실제 이마트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1~2월 이마트몰 신규 고객 22만여명 가운데 절반이 10~20대 고객이라고 밝혔다. 가격으로 시작한 이슈몰이는 성공했다. 이제는 이마트 뿐 아니라 가격 경쟁에 뛰어들었던 모든 업체들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상품 구성과 아이디어 경쟁을 이어가야 할 차례다.

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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