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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암보다 임신이 주요 이슈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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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금 의료계는 암, 심장병 등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관심은 임신으로 옮겨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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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회를 맞은 아산의학상의 첫 외국인 수상자가 된 로베르토 로메로(64·사진) 미국 국립보건원(NIH) 주산의학연구소 교수는 23일 “이번 수상이 한국 사회에 임신의 중요성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 열린 시상식에서 아산의학상 임상의학 부문을 수상했다.

아산의학상 수상 첫 외국인 로메로
30여 년간 산모·태아 건강 위해 노력
국내 의료진과 공동 연구로 인연

로메로 교수는 30여 년간 산모와 태아의 건강 증진에 힘써왔다. 그는 “태아의 건강 상태가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임신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오랜 기근에 시달린 산모가 낳은 아이들의 비만율이 특히 높았던 게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로메로 교수는 특히 조산(37주 미만 출산)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자궁경부 길이가 짧을수록 조산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또 초음파 검사 때 자궁경부 길이가 짧은 산모에게 미리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면 조산 위험성을 45%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그는 “미국에서는 조산 관련 의료비만 1년에 280억 달러(약 32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임산부의 조산 비율은 전체 임산부의 10%(연간 4만여 명)에 달한다.

그는 임신한 여성의 양수에 있는 ‘MMP-8’이란 물질의 농도를 측정해 조산 위험성을 미리 진단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1970년대까지 전체 임신의 1% 가량을 차지했던 자궁 외 임신을 혈액검사로 조기에 진단해 산모 사망률을 낮춘 것 역시 그의 공로다.

로메로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윤보현 서울대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NIH 주산의학연구소에 연수를 갔다가 그와 공동 연구를 진행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김종재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 박교훈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김연미 인제대 의대 병리과 교수 등 20여 명의 국내 의료진이 로메로 교수와 연구를 진행했고 공동 논문도 300편 넘게 발표했다.

윤 교수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임신과 조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는데 로메로 교수의 열정적인 연구를 보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로메로 교수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과 유사한 수준의 높은 기술력을 가진 도시”라며 “또 한국인만큼 탁월하고 도덕적인 연구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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