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 4인 ‘심야 석고대죄’…김종인 대답은 못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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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영선·표창원·우윤근 비대위원(왼쪽부터)이 22일 오후 서울 구기동 김종인 대표 자택을 찾아 면담했다. 세 위원과 김병관 비대위원은 김 대표에게 “당에 남아 주시라”고 호소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들이 22일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에 몰려가 심야에 무릎을 꿇었다.

더민주 자정까지 설득작전
문재인이 영입 김병관·표창원 가세
자택서 2시간 기다린 뒤 50분 만나

김 대표가 이날 오전부터 사퇴의사를 보이면서 총선을 불과 22일 앞두고 당 지도부가 와해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오후 8시15분쯤 박영선·우윤근·표창원·김병관 비대위원과 김성수 대변인이 김 대표 자택을 찾아갔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대위원들이 도착하기 15분 전인 오후 8시쯤 자택을 빠져나갔다. 김 대표는 ‘비대위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는 기자들의 말에 “나는 관심이 없다”면서 모처로 떠났다.

비대위원들은 자택에서 무작정 김 대표를 기다렸다. 결국 오후 10시30분쯤 귀가한 김 대표를 만나 오후 11시24분까지 한 시간 가까이 사의를 철회해 달라고 매달렸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김 대표의 부인 김미경 전 이화여대 교수가 와인을 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우윤근 비대위원은 김 대표 자택에서 나온 뒤 기자들에게 “당이 비례대표 공천에서 국민께 실망을 시켜드린 데 대해 비대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김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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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표가 22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사진 오상민 기자]

김 대표는 “왜 당신들이 사의를 표명하느냐”며 “내가 더민주에 온 이유는 수권정당을 만들기 위해서이지 비례대표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온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다만 김 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뚜렷한 답을 주지 않았다고 우 위원이 전했다.

하지만 23일 당 비대위 회의엔 출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천작업까진 끝내겠다는 뜻이다. 김 대표의 핵심 측근은 “사퇴 여부에 대한 결론은 좀 더 숙고한 뒤 조만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 대표는 오후 3시30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엔 잠깐 참석했다. 김 대표는 국회로 출발하면서 자택 앞에 있던 기자들에게 “여태까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산 사람인데 나를 욕보이게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무 거부를 끝낸 건 아니라는 의미였다. 사퇴 여부에 대해선 “얼마 안 가 내가 결심한 바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오전 자택에서 칩거 중 중앙일보와 짧은 통화를 했다. 김 대표는 “비대위 회의에 하도 와 달라고 해서 가긴 가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아직 (거취를) 결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위의 비례대표 순위 투표를 보니 결국 (운동권 세력이) 다 짜고 해 놓은 것이더라. 나는 웃음밖에 나오는 게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국회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측근에게 전화로 “이런 상태로는 총선도, 대선도 못 치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측근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가 비례대표 2번을 정한 것은 호남을 고려한 조치였는데 당에서 (‘셀프공천’이란) 모욕을 당했다”며 “이번에 보니 친노 패권주의라는 게 굉장히 뿌리 깊고 원외에 아주 많은데, 김 대표가 이래선 당을 맡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 인사는 “중앙위 투표 결과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만 당선권에 들었다”며 “이런 식으로 친노·친문 계파만으로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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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비대위 회의에서도 사퇴 여부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비례대표 2번 자리에 자신을 넣지 말라고 비대위원들에게 요구했다. 사퇴 가능성을 열어 놓은 셈이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은 일반 당원하고는 좀 달라야 한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고 김성수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표 측에선 “박영선·우윤근 비대위원이 김 대표의 순번을 14번으로 조정하는 데 동의한 것을 매우 서운해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회의에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저희를 두고 가지 마시라.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글=김성탁·안효성 기자 sunty@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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