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기업의 속살 드러나…수금기간 길고, 부채 많고, 출고가격 낮아

중앙일보

입력

중국 기업의 속살이 드러났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기업의 수금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평균적으로 83일 정도 걸린다. 중국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납품한 뒤 사실상 두 달이 넘는 어음을 받고 있는 셈이다.

호황의 절정기인 2007년엔 평균 50일 정도였다. 블룸버그는 "83일은 2000년 이후 가장 길다"며 "중국 기업인의 어려움이 중국의 경기침체기인 1998~99년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수금 애로는 중국의 민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서 갑(甲)인 국영 기업도 외상을 많이 깔아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국영 기업의 외상 규모가 5900억 달러(약 708조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외상은 최근 2년 새에 23%나 늘었다. 대만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한 규모다.

수금 애로와 외상 급증은 경기 둔화시기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경제 전체의 순환(circulation) 고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중국 기업은 공장 출고가격(생산자물가) 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올 2월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은 -4.8%였다. 2012년 3월 이후 48개월째 출고가격 하락이다. 이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이후 가장 긴 출고가 디플레이션이다. 일본 기업은 1990년대 60개월이 넘는 출고가격 하락에 시달렸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 출고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은 생산성 개선보다 중복·과잉 투자의 탓”이라고 지적했다.

수금과 출고 가격 동향은 시장경제에서 실물경제의 맥박과 같다. 기업의 현금흐름이 좋은지 나쁜지를 말해준다. 유진 커미스키 미 조지아공대(회계학) 교수는 분식회계에 관한 저서인 『은밀한 숫자게임』에서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땐 기업 내부자는 장부의 숫자를 만들어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라고 말했다. 적잖은 경영자가 외상을 일단 매출로 올려 영업이익 등을 부풀린 뒤 나중에 부도처리하는 방식으로 분식하곤 한다.

현금흐름 악화는 최근 중국 자본의 해외 인수합병(M&A)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도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요즘 중국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현금 흐름이 나빠 M&A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사냥꾼은 빚을 내 기업을 사들인 뒤 이곳의 현금흐름을 이용해 원금과 이자를 갚는 수법을 쓴다. 하지만 중국 기업은 현금흐름이 나쁘기 때문에 사냥감이 못된다.

수금 애로 등은 중국 금융시장에도 적신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상하이 그림자 금융시장이 사실상 기업의 여윳돈을 중개해주는 곳”이라며 “여기서 지방정부와 중소기업이 자금을 조달했다”고 전했다. 이는 금융이 충분히 발전(금융심화)하지 못한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때 수금 애로는 자금시장의 돈 가뭄으로 번질 수도 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중국 기업이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국 기업은 2009년 장사가 잘 될 것으로 보고 빚을 내 생산시설 등을 늘렸다. 그 바람에 중국 기업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111조7000억 위안(약 2경106조원)에 이른다. 중국 총부채(공공+민간)의 66.9%에 이른다. 게다가 중국 기업의 빚은 지난해 중국 GDP보다 1.6배나 많다.

이런 때 수금 애로는 기업 부도의 전조다. 실제 블룸버그는 “올해 중국 기업 파산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라고 전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은 20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발전 고위급 포럼(高層論壇)’에서 “GDP와 견줘 기업 부채가 너무 높다”며 “이는 거시경제 위기로 이어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 회장은 위기 여부를 판단할 때 기업 부채 규모와 수금 동향을 중요하게 살펴보는 지표로 삼고 있다. 그는 이 지표로 한국의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적이 있다.

더욱이 저우의 경고는 지금까지 중국 경제관료들의 말과 다르다. 그들은 주로 “빚은 많지만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저우가 기업의 불법적인 금융거래 규제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기업의 수금 상황과 맞물려 증폭효과를 내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