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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물림하는 가난] 2. 低학력·만성질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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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원을 못 다녀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과외를 합니다. 학교 공부만으론 그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국어나 수학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피아노도 배워야 하는데 형편이 안됩니다."

경기도 성남시 S초등학교 6학년 박민선(13.가명)양이 지난 1월 초 노무현(盧武鉉)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여섯살 때 朴양의 어머니는 가출했다. 아버지는 행방불명됐다.

할머니(63).동생(10)과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월 생활비는 약 50만원(정부 지원금). 朴양은 "우리가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가난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극빈층의 유일한 빈곤 탈출구는 교육이었다. 부모들이 없는 살림에 소 팔고 논 팔아 (학교)교육을 시킨 덕에 성공한 사람도 엄청 많다. 하지만 이젠 사뭇 달라졌다. 교육에서도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서울대 신입생 중 과외를 한 사람의 비율은 1971년 29.3%에 머물렀으나 2002년엔 71.1%로 껑충 뛰었다. 막노동 등으로 병까지 얻은 극빈층의 경우 사정이 더욱 딱하다. '저학력-막노동-질병-가난-자녀의 저학력'의 악순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못 배운 한(恨)도 대물림=본지와 사회보장학회가 서울 시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4백20명을 조사한 결과 74.5%는 못 배운 게 지금의 가난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들의 절반가량(32.6%)은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정도로 못 배운 한이 깊었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는 사람은 87.4%나 됐다. 그 이유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71.9%)이었다. 여성 가구주는 더 서럽다. 7.5%는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교육에서도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식을 공부시킬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11만원가량은 남들처럼 학교 교재비 등으로 지출한다.

사교육비로 쓰는 돈은 월 3만5천원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이 돈이 대부분(82%)의 극빈층에게는 부담스럽다.

◇질병이 가난을 낳고= 鄭모(80.서울 성동구)씨는 94년부터 당뇨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둘째딸은 13년째 신장 투석을 하다 98년 세상을 떴다.

그간 자신과 딸의 치료비를 대느라 가게와 집 두 채를 날렸다. 빚까지 졌다. 그래서 98년 극빈층으로 전락해 정부에서 생계비를 보조받고 있다.

본지의 이번 조사에서 집안에 만성질환자나 장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치료를 포기하거나 중단한 사람이 24.2%나 됐다. 이유는 불치병이거나 돈이 없어서가 각각 29%, 28%가량을 차지했다.

극빈층은 비보험 진료비 등으로 생활비의 8.8%를 지출하고 있다. 이 돈 때문에 대다수(86.2%)가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 병에 걸린 가족을 보살피느라 절반 이상(59.6%)이 일자리를 잃었다. 빚을 지거나(12.9%), 집을 줄인 경우(5.6%)도 있다.

건국대 김원식 교수는 "비보험 진료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때 저소득층부터 먼저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책기획부:신성식.하현옥.권근영 기자

<사진설명전문>
가난한 사람들은 건강이 밑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빈곤층은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자신의 몸을 돌보고 영양을 챙길 여력이 없다. 서울의 한 국립병원을 찾은 저소득층 환자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나서고 있다.[김상선 기자<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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