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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홍석재의 심야덕질] 왜 '빅쇼트'에 작품상을 주지 않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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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빅쇼트' 스틸컷]

‘빅쇼트’(1월 21일 개봉, 아담 맥케이 감독)여야 했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얘기다. 수상 확률도 제법 높았다. ‘빅쇼트’는 올해 미국제작자조합상(PGA)을 받았고, 지난 26년간 두 시상식의 작품상은 열아홉 번이나 일치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결과에 부쳐

문제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내가 작품상 수상작인 ‘스포트라이트’(2월 24일 개봉, 토마스 맥카시 감독)를 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당한 기분으로 욕하고 싶어 곧장 영화를 보러 갔다.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나와 한참 아무 말도 못했다. 분하지만 영화가 좋았다. 개인적 취향으로 지지하는 영화와는 분명 결이 다르지만, 그것으로 작품의 우열을 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좋은 영화란 ‘끝내주는 장면 세 개가 떠오르는 영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보면 ‘스포트라이트’는 신기할 만큼 뇌리에 남는 장면이 없다. 역으로 연기도 촬영도 어떻게든 튀지 않으려 바짝 힘을 준다. 모두가 가장 효율적인 부속품으로 영화 속 제자리에 있었다. 그 톤 앤 매너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는 절제력에 혀를 내둘렀다. ‘스포트라이트’는 부분의 총합보다 전체가 더 크다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 스타일이 너무 달라 둘을 동등한 기준으로 감상하기 어렵다. 다만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만들기 쉬운 영화가 있고 어려운 영화가 있다. 가톨릭 내부의 성(性) 추문 스캔들을 고발한 기자들과 관련된 영화를 찍는다는 건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것은 아주 좋은 각이 있는 아이템이다. 명확한 적(敵)의 설정과 피해자 아니 생존자의 고통을 다룸으로써 감정 이입할 측면이 분명해진다.

그에 반해 ‘빅쇼트’는 명백하게 만들기 어려운 쪽에 속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사태가 어려워서? 맞다. 그것도 맞는 이유다. 그런데 소재가 어렵고 복잡한 것보다 더 큰 쟁점은 여기서 인간 속성을 뽑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는 이미 영화로 다룬 지 오래됐고, 그 안에서 쓸 만한 수법들이 생기고 계승됐다.

아주 상투적인 예를 들어 보자.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는 감정의 격동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의 표면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적 언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의 세계는 예술적 표현력으로 아직 모두 다뤄지지 않았다. 그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달리 문명은 지금도 형태와 성질이 변화하고, 이전에 없던 무언가가 생기고 있다. 따라서 가장 동시대적인 것들일수록 영화나 예술이 다루지 못한 미답지가 된다. 문명을 추동시키는 제일의 동력원은 돈이고, 돈 자체가 상품인 금융 자본 시스템은 문명의 현재 진행형 안에서도 맨 앞에 위치한다. 영화에서처럼 비유해 보면, 낯선 재료가 주방에 들어왔는데 이 재료를 가지고 요리한 적이 없는 경우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건가?’라는 심정이 금융 자본의 세계를 영화로 만들어야 했던 ‘빅쇼트’ 제작진의 속내였을 것이다.

‘빅쇼트’의 놀라움은 그런 재료로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냈다는 지점이다. 심지어 아주 새로운 맛이다. 돈을 받고 제법 팔기까지 했다. 영화 내부의 성취와 전술적 지점에서의 승패를 결정 짓는 존재가 감독이라면, 영화 외부의 성취와 전략적 지점에서 성사를 결정 짓는 것은 제작자다. 낯선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선보인 셰프도 대단하지만, 뚝심 있게 그 메뉴를 팔아 치운 식당 주인이야말로 놀랍다. 그래서 미국제작자조합에서 상을 줬다고 생각한다. 업자는 업자를 아니까.

이제 영화는 스마트폰을 빼놓고 인간의 삶을 그려내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그 안에서 이야기는 적응하고 변화한다. 혹시 멜로 장르의 퇴보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본 적 없나? 난 그 이유가 스마트폰 때문이라 본다.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감정적 거리와 시간 사이의 오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요즘의 좋은 멜로영화는 하나같이 시대극이다. 하나의 장르가 퇴보한다는 건 사람들의 세계관 변화와도 연결된다. 반대로 스마트폰 때문에 탄생하는 장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장르의 규칙과 전제가 수정되고 있다. 이런 게 동시대성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을 영화적 표현력으로 따라잡으려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과거 원시인이 겪었던 자연재해와 현대 도시인이 처한 경기 침체, 디플레이션, 환율 상승 등의 숫자 변화는 사실 다를 바 없다. 이것이 우리의 동시대이고, 우리가 영화로 찍어야 할 현재의 자연이다. 여기서 인간 속성과 감정의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빅쇼트’는 그걸 해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보수적이고 변화가 느린 걸로 유명하다. 감독의 최고 걸작 혹은 배우의 인생 연기를 놓치고, 당대와 조응하는 가장 예민한 작품을 번번히 외면해 온 오스카의 이번 선택이 도리어 ‘빅쇼트’의 진가를 확인시켜 줬다고 위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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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재
영화감독. '소셜포비아'(2015) 연출. 타고나길 심심한 인생인지라 덕질로 한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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