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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 흑백 영화와 라이브 연주의 만남 “일상을 마법 세계로 바꾸는 게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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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6 면

동화나 애니메이션으로만 알았던 ‘미녀와 야수’가 빈티지 아방가르드 시네마와 전위적 현대음악을 결합한 ‘예술작품’으로 찾아온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위 음악가 필립 글래스(79)가 1994년 작곡한 필름오페라 ‘미녀와 야수’(22~23일 LG아트센터, 25일 통영국제음악제)다. 그의 내한은 2003년 LG아트센터 ‘캇씨(qatsi) 시리즈’ 공연 이후 13년 만이다.


필립 글래스는 1960~70년대 현대예술의 주류였던 미니멀리즘을 이끈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하나다. 특히 1976년 아방가르드 연출가 로버트 윌슨과 함께 만든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오페라 형식을 완전히 깨버리며 공연사에 길이 남을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시즌 개막작으로 초청돼 국내에 선보인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40년 세월에 혁신의 빛이 바래긴 했지만 단순한 음계가 무한 반복되며 화성미의 정수를 드러낸 글래스의 음악만큼은 여전히 이 작품이 왜 ‘오페라의 혁신’으로 불리는지 웅변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본 가장 독특한 음악경험… 순수하면서도 가장 복잡하고 이국적인 화성이며 가장 디테일한 음악”이라는 영국 뮤지션 브라이언 에노의 표현 그대로였다.


하지만 글래스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거머쥐며 현대예술의 경계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미니멀리스트들과 구별된다. 교향곡·오페라 등 클래식 장르에서의 혁신은 물론, 재즈·록·월드뮤직의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경계 없는 협력, 그리고 영상과 음악의 혁신적 결합을 이끈 필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현대음악에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쿤둔’ ‘트루먼쇼’ ‘디 아워스’ ‘일루셔니스트’의 주옥같은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스토커’를 함께 작업한 박찬욱 감독은 그를 가리켜 “우리 시대 모차르트”라고 찬양한 바 있다.


필름오페라 ‘미녀와 야수’는 1990년대 절정의 경지에 올랐던 필름 프로젝트 ‘장 콕토 3부작’중 하나다. 20세기 초의 ‘르네상스맨’ 장 콕토(1889~1963)의 예술세계를 깊이 존경해온 그는 동화의 판타지를 한 편의 시처럼 구현한 콕토의 흑백영화 ‘미녀와 야수’(1946)에서 예술 창작의 본질을 읽었다. CG나 분장술이 발전하기 이전임에도 트릭 샷이나 극도로 섬세한 촬영으로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해 로맨틱 판타지의 고전이 된 이 영화야말로 “보통의 세상을 마법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우화”이며 이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사명이란 것이다.


“내게 콕토는 20세기 근대 예술운동의 중심이었다. 그는 예술·불멸성·창작 과정을 작품 주제로 삼아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지만 당대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녀와 야수’는 처음엔 단순한 동화로 보이지만 보다 넓고 깊은 주제인 예술 창작의 본질을 다루고 있음을 곧 알게 된다. 작가이자 화가이며 영화감독이었던 콕토는 최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다채로운 예술형태를 활용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음악을 더해 ‘필름 오페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콕토의 예술운동을 오마주했다. 대사와 음악 등 소리가 모두 제거된 흑백영화가 상영되는 가운데, 필립 글래스가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하고 4명의 가수가 스크린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면 95분간 마치 흑백 오페라를 라이브로 보는 듯한 독특한 감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 위한 작곡은 매우 복잡했다.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가 스크린 속 배우의 대사와 시차 없이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장 콕토 3부작’ 중에서도 필름 전체를 그대로 적용한 작품은 ‘미녀와 야수’가 유일한 이유다. 새로운 세상을 열 만한 예술 창작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이 전무후무한 무대를 놓쳐선 안 될듯 하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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