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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밀당과 썸 타는 문화 속에 깃든 불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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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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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거리에서 행인의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다운 후배 여성이 물었다. “남자들이 그냥 친절한 것과 흑심이 있어서 친절한 것의 차이는 뭐예요?” 얼마나 많은 친절을 경험했을까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젊고 예쁜 여자에게 ‘그냥’ 친절한 남자는 없어.” 내 답변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고백해온 남자는 아무도 없었는데요.” 이번에는 내가 눈을 치켜 뜨자 해명하듯 덧붙였다. “썸 타는 남자는 몇 명 있어요.”

언젠가 이 지면에서 성격 특성에 따라 내면에 형성된 사랑의 정의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마찬가지로 각 학문도 사랑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를 제시한다. 진화심리학은 사랑을 ‘자신의 생존에 유익한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은 사랑을 초기 애착 대상을 복원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이자 병리적 상호의존 행위라고 규정한다. 생물학은 사랑을 호르몬의 작용이라 본다. 낯선 호르몬에 대한 매혹이 사라지면 사랑의 열정도 식는다. 다양한 경로로 사랑의 실체가 밝혀지며 신비감이 사라진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사랑을 경험하는 일에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듯 보인다. 밀당을 즐기거나 썸 타는 관계에 머무는 것이 적당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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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가 사랑에 무관심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합당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여자를 사귀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경제적·시간적 소비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감정적으로 여자 비위 맞추는 일도 피곤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유를 구속당하는 일도 번거로울 것이다. 일단 고백했다가 거절당할 가능성부터 감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덤볐다가는 스토커나 폭행범이 되기 십상이다.

그 많은 이유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진짜 마음은 단 하나, 불안감이다. 거절당했을 때의 낙담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양보나 배려가 손해 보는 일일까 봐 불안해한다. 연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을까 봐, 사랑 때문에 미래가 흔들릴까 봐 불안이 크다. 불안한 젊은이에게 사랑이란 썸 타는 관계 정도가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융 학파 현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원형 속에 현대인의 불안감이 스며들어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표현된다고 제안한다. 마술사 원형은 위험사회의 사기꾼이 되고, 전사 원형은 분노지수 높은 사회에서 폭행범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 원형도 불안에 오염돼 난봉꾼이 되거나 썸만 타다 만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