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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전문 간호사 도입, 1만3000명 일자리 늘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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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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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3월 4일자 5면 ‘일자리 새 해법’.

정부가 ‘수의 테크니션(Veterinary technician·동물 전문 간호사)’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현재 동물병원에서 간호사 역할을 하는 이들은 규제 때문에 역할이 제한적인데 수의 테크니션이란 신(新)직업을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고 반려동물 산업 파이도 키우자는 취지다.

현행법상 수의사 빼곤 무면허 진료
지금은 주사 못 놓고 사료 팔고 청소만
정부 “법 개정해 국가 자격화 검토”

농림축산식품부는 본지 3월 4일자 1·4·5면을 통해 보도한 ‘규제 풀어 신직업 수 늘리자’ 기사와 관련, 수의 테크니션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해당 기사는 규제에 묶인 수의 테크니션을 비롯해 민간 조사원(사립탐정), 척추 교정사(카이로프랙틱), 1인 관광 안내사, 타투이스트(문신시술자) 같은 11개 직업을 국내에서 키울 경우 향후 5년간 20만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최명철 농식품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은 “수의 테크니션을 일반 병원 간호사처럼 국가 자격으로 만들어 관리하고 진료 보조 행위를 허용하는 식으로 수의사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은 수의사의 진료 행위만 허용할 뿐 ‘동물 간호’ 행위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수의사법 시행령 12조에서 수의사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사육하는 동물에 대한 진료(자가진료)가 가능하도록 예외를 뒀지만 간호사 업무에 대해선 규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르면 현재 동물병원에서 간호사 역할을 하는 이들이 주사를 놓거나 채혈하는 등 간단한 조치만 해도 ‘무면허 진료’로 분류된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까지 받을 수 있다. 사람 치료와 관련한 의료법이 간호사의 업무와 간호 범위를 상세하게 규정한 것과 대비된다.

11개 지점을 둔 대형 동물병원 체인 ‘이리온’은 최근 간호사가 약을 짓고, 청진하고, X선을 촬영하는 등의 내용을 방송에 냈다가 영업정지 조치를 당했다. 박소연 이리온 대표는 “법대로라면 동물병원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 사료용품 판매나 수의사가 진료할 때 동물을 붙잡는 정도에 그친다”며 “동물은 사람 간호와 달라 전문 인력의 손길이 필요한 만큼 수의 테크니션의 영역을 넓혀야 수준 높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의사 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농식품부가 수의 테크니션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대한수의사회는 보도 직후 홈페이지에 ‘중앙일보 기사를 접한 정부가 수의 테크니션 제도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자가진료를 철폐하지 않고 주사·채혈을 하는 간호사 제도를 결사 반대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잘못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경우 그 피해는 동물과 보호자, 수의사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고려해 긴급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곤 지난 14일 ‘수의사 설문 결과 84%가 수의 테크니션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 제도 도입을 철회해 달라’는 의견을 농식품부에 제출했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상무는 “반려동물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제도를 도입할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는 수의 테크니션이 불법 진료에 나설 수 있다. 항생제 오·남용, 동물학대 같은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물병원 대형화·전문화 추세에 따라 수의 테크니션을 도입한 대형 병원이 늘어나면 개원의 시장이 쪼그라들 것이란 우려 때문에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연철 상무는 “경영난에 시달리는 개업의가 많은데 수의 테크니션까지 도입하면 동물병원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동물병원 원장 김모씨는 “병원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간단한 의료 조치까지 일일이 수의사가 맡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많은 병원이 수의 테크니션 구인난을 겪는 만큼 해당 제도를 도입하면 일 자리를 늘리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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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용정보원은 수의 테크니션 제도를 국내에 도입할 경우 일자리 1만3000개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얽히고설킨 규제를 풀 경우 보건·의료·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수의 테크니션 논란을 계기로 신직업 육성을 전문성 있는 일자리를 늘리고 해당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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