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져 있던 청년실업 빙산 '22만 공시족'…9급 원서접수에 수면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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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1년 남짓 다니다가 2013년 퇴사한 정모(34)씨는 3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백수’ 첫해 7급 공무원 시험 필기에 낙방하자 바로 9급 공무원 시험으로 돌아섰다. “나이도 있고 올해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도전한다”고 정씨는 말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정씨는 실업자일까, 아닐까. 정답은 ‘매월 다르다’이다. 상식과 다른 정답이 나온 건 통계청의 고용 통계 작성 기준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평상시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모두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에서만 비율을 내는 실업률 통계에 당연히 들지 않는 인원이다. 학교·학원을 다니는 상태면 ‘수강’ ‘재학’, 혼자 공부한다면 ‘쉬었음’ 등으로 나뉘는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씨 같은 ‘공시족’이 공무원 시험에 원서를 접수하는 순간 신분이 바뀐다. 응시 자체가 구직 활동에 나섰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경제활동인구로 넘어간다. 시험에 합격한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실업자 신세다.

다시 정답 풀이. 올 1월말 인사혁신처는 9급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를 마감하고 2월 접수 인원을 공개했다. 22만2650명이 지원했다. 1월 비경제활동인구로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정씨를 포함한 ‘22만 공시족’은 2월 실업자 신분이 됐다. 올해 2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12.5%를 기록한 이유다.

16일 통계청 ‘고용동향’ 보고서를 보면 2월 청년 실업률은 1999년 통계 편제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심원보 통계청 고용동향과장은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포인트 증가했는데 (공무원 시험 응시자 증가) 효과가 최소한 0.5%포인트 (청년 실업률이) 상승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2월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공무원 시험에 따른 강한 기저효과(비교 대상 수치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아 나타나는 통계 착시)”라고 말했다.

문제는 똑같이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가 있었던 지난해 초보다 청년 실업률이 더 올라갔다는 점이다. 역시 공시족 급증이 주원인이다.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 응시자만 해도 지난해 19만987명이었는데 올해 22만2650명으로 3만 명 넘게 늘었다. 지방직, 7급, 5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까지 따지면 올해 공시족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악의 구직난에 민간 기업 일자리가 줄고, 기존 기업의 업무 환경도 나빠지자 공시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었다.

이호승 경제정책국장은 “수출, 산업활동, 소매판매 등 영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으로 3~5월 (고용동향은) 2월보다 좋은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부 전망이 맞아떨어지리라 예단하기 힘들다. 매월 ‘마이너스(-)’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수출, 예고된 제조업 구조조정, 점점 높아지는 구직 문턱 등 위험 요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실업난은 청년층 만의 문제가 아니다. 2월 전체 연령층 취업자 수 증가폭은 전년 동월 대비 22만3000명에 그쳤다. 지난해 4월 이후 최저다. 실업률은 더하다. 4.9%로 2010년 2월(4.9%)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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