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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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국내 기관투자가의 주식보유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7일 증권거래소가 내놓은 '기관투자가의 주식투자 현황 및 매매행태 분석'에 따르면 기관의 주식보유 비중(시가총액 기준)은 1996년 30.7%에서 2002년 15.9%로 6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뒷북 투자, 단기매매=기관들은 주가가 오르면 뒷북 투자에 나서고, 침체장세에서는 주식을 팔아 주가 하락을 부채질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석 결과 기관들은 1995~98년과 2000~2001년의 침체 장세에서 매매 비중을 대폭 낮추면서 10조7천억원~11조4천억원 정도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주가는 각각 559포인트와 234포인트 떨어졌다.

거래대금을 보유주식 금액으로 나눈 매매회전율도 시장 전체 평균 2백48%의 두배인 4백98%에 달했다. 기관들이 단기매매에 치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평균 이하인 1백83%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외국인에게 주도권 내줘=외국인들은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36%를 차지해 기관투자가(15.9%)를 제치고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특히 국내 우량 30대 기업에 대한 주식 보유 비중이 외국인들은 28.3%에 달하는 반면 기관들은 19.8%에 그쳤다. 이는 기관들이 국내 우량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장기업에 대한 경영권 감시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올 1분기에 기관들의 의결권 행사(1천3백35건)는 크게 늘어났지만 주총 안건에 대한 찬성률이 95.5%에 달해 '거수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됐나=최근 기관들에 '로봇'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국고채 등 안전자산에 주로 투자하고, 주식투자는 지수 변동에 따라 일정량의 주식을 사고 파는 프로그램 매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증권거래소가 76개 기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운용자산 중 주식투자 비중이 20% 미만인 기관이 전체의 절반 이상(59.2%, 45개사)으로 나타났다. 특히 1백12조원의 자금을 보유 중인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비중은 5.1%에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의 연기금 '캘퍼스'는 미국과 해외주식을 합쳐 펀드의 60%를 주식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침체장에서 주식을 많이 샀어야 했는데 고객의 돈을 받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주식투자상품의 장기화 및 대형화를 유도하고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해 주식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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