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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조각으로 부서진 ‘봉황유리병’ 어떻게 치료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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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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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봉황모양 유리병’ 조각을 붙이고 있는 이상수씨와 2014년 새로 복원한 유물.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봉황모양 유리병’은 삼국시대 해외교류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다. 1973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이 유리병은 신라와 페르시아의 교역상황을 일러준다. 형태가 고대 그리스 유리병인 오이노코에(Oinochoe)와 유사하다. 비단길·바닷길을 통해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주둥이가 봉황 머리를 닮아 ‘봉수병(鳳首甁)’으로도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를 지키다’전
관음보살상, 기마인물형 토기 등
유물 57점 복원·재생과정 한눈에

이 유물은 출토 당시 480여 조각으로 파손된 상태였다. 두께 0.3㎜의 얇고 작은 조각더미였다. 복원 작업은 힘겨웠다. 수백 개 조각의 위치를 찾고, 또 그것을 하나하나 붙이는 데 6년이 걸렸다. 84년 그 신비스런 자태가 처음 공개됐다. 복원 과정에는 국내 보존과학 1세대로 꼽히는 이상수(1946~98)씨의 공이 컸다. 71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과 임시고용원으로 들어온 그는 98년 타계 직전까지 문화재 보존현장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봉황머리 유리병’은 2014년 또 한 차례 ‘대수술’을 받았다. 30년 전에 복원하지 못한 곳을 되살리고, 누렇게 변한 복원 재료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접착제 기능도 한층 좋아졌다. 손잡이에 감겨있던 금실의 성분과 제작기법도 새로 알아냈다.

‘병들고, 낡은’ 문화재에 생기를 불어넣고, 원래 모양으로 살려내는 게 보존과학이다. 올해는 국립박물관에 보존과학이 들어온 지 40년이 되는 해. 76년 박물관 귀퉁이에서 이상수·이오희(68·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석좌교수) 두 명으로 시작한 보존과학 전문인력은 현재 30명으로 늘었다. 미국·일본 등에 비해 아직 미흡하지만 국내 보존과학의 수준·시설은 꾸준히 개선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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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출토된 송나라 ‘용 구름무늬 주자’와 3D 복원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내 보존과학 40년을 돌아보는 특별전 ‘우리 문화재를 지키다’가 8일부터 5월 8일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7일 둘러본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78년에 보존처리한 ‘관음보살상’(국보 127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67년 서울 삼양동에서 찾은 이 금동상은 발견 당시 곡괭이에 맞아 발목에 금이 가고, 주변 옷자락이 세 개의 조각으로 파손됐었다. 장비·인력이 열악했던 시절, 알칼리 용액으로 청동녹을 제거했고, 그래도 붙어있던 녹은 이쑤시개·메스 등으로 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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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나온 ‘기마인물형 토기’ 조각과 원형을 살린 모습.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사람마다 사연이 있듯 전시 유물에는 각기 남다른 ‘과거’가 있다. 전시품에 붙은 설명과 동영상 자료를 살펴보면 훨씬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출품작 57점 가운데 국보급 문화재도 많아 ‘공부와 감상’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제격이다. 국보 91호 기마인물형 토기, 국보 195호 토우장식항아리, 국보 141호 잔무니 거울(다뉴세문경) 등 눈이 호사를 누린다. 금속·도자기·서화·목재·석재 등 분야별 대표작을 내놓았고, X선·자외선·적외선 투시, CT촬영 등 첨단기술도 망라했다. 문화재 종합병원, 문화재과학 특별관을 새로 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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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가 7일 ‘백납도8폭병풍’(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을 수리하고 있다.

관객 친화형 기획도 눈에 띈다. 문화재 치료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오픈 랩(Open Lab)‘ 두 곳을 마련했다.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보존과학실의 출장형 서비스다. 주중 1일 2회(오전 10시, 오후 2시) 해설이 진행된다. 주말 어린이 교실, 매주 수요일 ‘큐레이터와의 대화’(오후 7시)도 준비됐다. 이용희 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문화재는 당대 미학·과학의 집합체”라며“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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