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선 앞두고 재벌 길들이기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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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러시아 검찰이 지난 4일 80억달러의 개인재산을 가진 세계적 재벌이자 러시아 제2위 석유기업 '유코스'의 사장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40.사진)를 전격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유코스사 고위 간부의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를 명목으로 그를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청사로 불러 두시간여 동안 조사한 뒤 돌려보냈다.

모스크바 정.재계는 호도르코프스키가 그동안 야블로코당과 우파연합(SPS) 등 야당을 후원해온 점에 비춰 크렘린궁이 오는 12월 총선 및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그에 대한 조사는 또 세계 석유업계의 최대 거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유코스와 러시아 5위 석유기업 '시브네프티'간 합병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터져나왔다. 두 회사가 합치면 세계에서 넷째로 큰 석유기업이 탄생한다.

호도르코프스키는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언론과의 회견에서 "조사관들의 질문이 유코스 운영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 이번 조사가 정치적 동기와 연관돼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싱크탱크 그룹 헤리티지재단 모스크바 지점의 예브게니 볼크 소장은 "호도르코프스키 사장에 대한 검찰 조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로 보인다"며 "그가 푸틴 대통령에 맞서다 쫓겨난 언론재벌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호도르코프스키는 러시아 내 최대 갑부이자 40세 이하 세계 경제인 가운데 2위 재산가로 꼽힌다. 그는 24세 때인 1987년 메나테프 은행을 설립했고 95년 유코스를 3억5천만달러에 인수해 세계적 석유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때 그의 차기 대선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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