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은 박해 상징물…어디 놓든지 한국인이 판단할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기사 이미지

“30년 학자생활의 마지막 페이지를 서울대에서 쓸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역사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았지요. 선택의 결정 기준은 오로지 객관적인 ‘학자의 양심’이었습니다.”

서울대서 정년, 이케 스스무 교수

 지난달 29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6년 교수 정년식. 역사교육과 이케 스스무(池享·사진) 교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1987년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학에서 일본경제사를 가르치며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국 땅인 한국에서 정년을 맞았다.

 이케 교수는 90년 중반부터 서울대 인문대 교수들과 학술 교류를 하며 한일 양국의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2014년 9월 서울대 역사교육과 정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2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주요 역사적 현안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참여도 했다.

지난해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382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국적을 떠나 국민이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없애려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문에 대해선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은 합의는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는 “박해의 상징물을 어디에 두느냐는 한국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케 교수는 퇴임 후에도 8월까지 방문교수 신분으로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계획이다. 그는 “한·일 두 나라가 발전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서로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며 “강단을 떠나도 두 나라의 상생을 위한 학자의 소임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윤영관 정치외교학부 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최중환 의학과 교수, 정대석 국악과 교수 등도 정년 퇴임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