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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제도 악용 근로자 주택전세자금 가로챈 일당 적발

중앙일보

입력

허술한 제도를 이용해 근로자 주택전세자금 수십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일당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대전지검은 29일 허위로 작성한 임대차계약서를 금융기관에 제출해 30억원 가량의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전직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최모(45)씨 등 12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가운데 대출 브로커 최씨 등 8명을 구속 기소하고, 이름을 빌려 준 허위 임차인·임대인 A씨(28·여) 등 7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달아난 11명은 기소중지하고 34명은 수사 중이다.

2014년 9월 이른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최씨는 A씨에게 대출에 필요한 재직증명서 등을 위조해줬다. 최씨는 명의를 빌려 구입한 부동산을 근거로 A씨와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 A씨는 계약서를 전세자금 대출용으로 금융기관에 제출했다. 이런 방식으로 받아낸 대출금은 최씨와 A씨, 부동산을 구입할 때 명의를 빌려 준 서류상 구매자 등이 나눠가졌다.
최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40차례에 걸쳐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금 27억9300만원을 받아냈다. 이번에 적발된 일당이 2014년 9월부터 최근까지 가로챈 대출금은 34억1150원에 달한다. 허위 서류로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사람들은 원금과 이자를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하며 금융기관의 추적과 상환독촉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 주택전세자금 대출은 시중은행에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받아 근로자에게 8000만~1억원까지 전세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대출요건 심사가 서류 위주로 이뤄져 범죄에 악용되기 쉽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정부 출연금 등으로 조성된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금의 90%를 은행에 대신 갚아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대출을 받은 뒤 조직적으로 잠적하는 등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관계기관에 수사결과를 통보하고 대출금 회수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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