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중의 썰로 푸는 사진] 군산 히로쓰 가옥 '뭉크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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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97주년을 맞습니다. 한세기가 지났습니다. 여전히 한반도의 주변 정세는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북핵이 야기한 긴장 상태가 지속됩니다. 섬과 대륙을 연결하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끊임없이 외세의 침탈을 받아 왔습니다. 게다가 남북으로 분단까지 됐습니다. 그 어느때 보다 외교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외교의 카드는 '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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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는 일제 점령기 때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이 많습니다. 항구가 있던 이곳은 조선은행, 군산세관 등 일제의 수탈기관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곡창지대인 호남에서 식량을 침탈해 가기도 했습니다. 군산시 신흥동에는 포목점을 운영했던 일본인 부상(富商)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가옥이 있습니다.원형이 잘 보존돼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도 유명합니다.

히로쓰가옥은 나무로 된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입니다. 집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형상을 발견했습니다. 나무 판자에 박힌 못에서 흘러나온 녹물과 검은 곰팡이가 만든 형상이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절규'를 닮았습니다. 우연일까요.

문득 일제 강점기에 신음하던 민초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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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위에 새겨진 형상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호통을 치는 일본의 헌병과 절규하는 민초의 얼굴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대한제국판 '절규' 입니다.

주기중 기자·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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