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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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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18면

2월 초순까지 이어졌던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유럽의 은행위기 우려나 마이너스 금리라는 일본의 극약처방 같은 예기치 못했던 변수가 작용했다. 게다가 기대했던 정책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 나타난 점은 시장의 혼란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금리 정책은 수요를 자극하는 동시에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경기가 나쁜가?’하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수요 증가 조짐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엔화표시 자산 수요가 늘어나 엔화는 오히려 초강세를 보였다. 금리 낮춰도 부채 부담에 수요 늘지 않아결코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나라 역시 기준금리를 낮춰도 소비와 투자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진단이 확산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금리를 낮추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지만 가계부채 부담과 미래 불안 등으로 인해 수요가 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강일구 일러스트

이밖에도 정책 효과가 제약 받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2000년대 중반 실시된 6세 미만 무상입원비 정책을 보자. 당시 매년 5% 전후던 6세 미만 입원비 증가율이 제도 도입 후 두 자리 수로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폭증하자 2년만에 정책이 폐기됐다. 과잉 입원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12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대형마트에 대한 휴일 의무휴업 조치도 비슷한 예다. 대형마트가 휴업하자 소비자들은 휴무일 전후에 대형마트에 가거나 편의점·온라인마켓·소셜커머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재래시장 등 골목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당초의 정책 의도가 충분히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학에서 ‘ceteris paribus’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영국의 경제학자인 마샬이 경제법칙의 정립을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논의를 정책효과 분석으로 확장하면, 정책 이외에 나머지 변화는 없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이 가정은 명쾌한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금리 인하의 예에서 보듯이 가계부채 증가 등 현실의 수많은 변화들을 반영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면 “금리 인하는 수요를 늘린다”가 아니라 “금리 인하는 수요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맥빠진 명제만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 관행만 답습해서는 효과 없어아울러 경제 주체들은 정책 변화에 적응해 그 상황에서 최적화를 위한 행동을 취한다. 또한 하나의 변수가 변하면 다른 변수들이 변화해 여러가지 예기치 못했던 효과가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당초 의도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결과적으로 경제정책 무용론이 확산되고, 경제학이 유용한 학문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경제현상은 복잡했고, 하나의 변수가 변하면 그와 얽혀있는 수많은 경제적·비경제적 변수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경제·산업 및 사회 발전에 따라 구조가 다양화되고 연결망이 촘촘해진데다, 글로벌화가 맞물리면서 하나의 변화가 주는 파급 효과의 범위와 강도가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커졌다.


정책에 대한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인식과 기대의 변화, 대응 방식도 과거에 비해 훨씬 예민하고 폭넓게 나타난다. 교육수준 상승과 미디어의 발달로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똑똑해진데다 규제 완화와 새로운 정보기술(IT) 서비스의 출현으로 대체 및 회피수단이 다양해졌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경제 주체간의 원활한 소통과 이에 따른 공동 대응이 가능하게 됐다. 때로는 도덕적 해이까지 개입하면서 경제 주체들이 정책 목표에 협조하기보다는 자기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정책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저성장과 저물가·고부채 등 거시환경 변화 외에도 복잡한 경제 및 사회 구조, 기술 발전을 감안한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경제 주체가 자신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창의적이고 세심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경제정책이 변화한 환경을 감안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는데 그치고 있다.


과거의 정책 환경이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ceteris paribus’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면, 현재와 미래의 정책은 이와 반대로 ‘mutatis mutandis’, 즉 다른 조건이 적절히 변화하는 것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조건은 정책에 따라 독립적 혹은 의존적으로 변화하는 환경과 정책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대응을 포함한다. 더 포괄적인 정책 환경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경제 주체들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사전연구를 통해 정책 목표와 경제 주체들의 효용극대화 행위를 정렬시켜야 할 것이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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