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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웅의 속도전, 우승까지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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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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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25일 OK저축은행을 꺾고 7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이뤘다. 환호하는 선수들 앞에서 최태웅 감독(오른쪽)과 외국인 공격수 오레올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파죽지세. 빠르고 다양한 공격 루트로 무장한 현대캐피탈의 ‘스피드 배구’가 수년간 프로배구를 지배했던 ‘몰빵 배구’의 시대를 끝냈다.

현대캐피탈 7년 만에 리그 정상

현대캐피탈은 25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6라운드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20 25-16 25-22)으로 완승하며 16연승을 기록, 26승 8패(승점 75점)로 남은 두 경기의 결과에 관계없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16연승은 구단 역대 최다이자 프로배구 한 시즌 최다 기록이다. 3라운드까지 4위에 그쳤던 현대캐피탈은 후반기 무서운 연승행진으로 2008-09시즌 이후 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올 시즌 수많은 어록을 만든 최태웅(40) 현대캐피탈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를 일컫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사자성어를 꺼냈다. 그는 “물이 코트라면 선수들은 물고기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코트라는 물에서 신나게 물장구치고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물 만난 고기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1세트부터 경기를 마칠 때까지 6명이 모두 제 몫을 해내며 상대를 압도했다. 5라운드 초반까지 1위를 달리던 OK저축은행은 주전 세터 이민규(24)가 어깨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12시즌에서 다섯 번이나 2위를 기록했다. ‘만년 2인자’에 머물렀던 현대캐피탈은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몰빵 배구’ 대신 ‘스피드 배구’와 선수들을 두루 활용하는 ‘토털 배구’를 펼쳤다.

최 감독은 키만 컸던 세터 노재욱(24·1m91㎝)을 KB손해보험에서 트레이드 해와 새 배구의 중심에 세웠다. 기민한 플레이에 능한 노재욱의 장점을 발굴해 완성도를 높여준 것이다.

 3년 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실패를 맛봤던 외국인 선수 오레올(30·쿠바)은 탄탄한 수비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재평가됐다.

리그 최고의 국내 선수였지만 잦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문성민은 주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센터 최민호(28)와 신영석(30), 레프트 박주형(29)과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38)도 우승의 주역이 됐다. 

 경기 전 “소풍가기 전날 같은 기분”이라던 최 감독은 이날 경기 내내 작전판을 들고 분주하게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땐 “쉽게 (우승을) 얻으려 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취미로 중학교 수학문제를 푸는 최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선수로 뛰다 코치를 거치지 않고 덜컥 감독이 됐다. 그러나 부드러운 리더십과 예리한 작전 구사로 선수(삼성화재 시절)와 감독으로 동시에 우승한 최초이자 V-리그 역대 최연소 우승 사령탑이 됐다.

최 감독은 “난 오늘도 실수를 할 만큼 아직 초보티를 벗지 못했다. 대신 선수들이 잘해줬다”며 “계속 이기면서 선수들 간 신뢰와 믿음이 강해졌다. 특히 주장 문성민이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안산=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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