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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스피드 배구'로 7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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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물 만난 물고기들이 프로배구판을 뒤집었다. 빠르고 다양한 공격 루트로 무장한 현대캐피탈의 '스피드 배구'가 그동안 프로배구를 지배했던 '몰빵 배구'의 시대를 끝냈다.

현대캐피탈은 25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6라운드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20 25-16 25-22)으로 승리하며 16연승을 기록, 남은 2경기의 결과에 관계없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16연승은 구단 역대 최다 연승이자 프로배구 한 시즌 최다 연승 신기록이다. 현대캐피탈은 무서운 연승행진으로 2008-2009시즌 이후 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었다.

올 시즌 수많은 어록을 만든 최태웅(40) 현대캐피탈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를 일컫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사자성어를 꺼냈다. 그는 "물이 코트라면 선수들은 물고기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코트라는 물에서 신나게 물장구치고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주목하는 '물고기'는 없었다. 최 감독은 "한 선수가 특출나게 잘하기보다는 작은 물고기들도 조화를 이뤄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트에 들어선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1세트부터 경기를 마칠 때까지 준비한대로 침착하게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를 압도했다. 5라운드 초반까지 1위를 달리던 OK저축은행은 주전 세터 이민규(24)가 어깨 부상으로 빠진 공백이 컸다. 막판 현대캐피탈의 질주를 막지 못하고 안방에서 상대의 우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05년 V-리그가 시작된 이후 외국인 선수의 활약에 따라 우승의 향방이 가려졌다. 삼성화재는 레안드로·안젤코·가빈·레오에게 공격의 절반 이상을 몰아주는 '몰빵 배구'로 7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 삼성화재 천하를 끝낸 OK저축은행 역시 대형 공격수 시몬(29·쿠바)에 대한 의존이 심했다.

12번의 시즌에서 2위만 5번 차지하며 만년 2인자에 머물렀던 현대캐피탈은 '스피드 배구'와 함께 선수들을 두루 활용하는 '토탈 배구'를 펼쳐 성공을 거뒀다. 키만 컸던 세터 노재욱(24·1m91cm)은 정확도는 떨어졌지만 스피디한 공격 연결에 재능이 있었다. 이 점을 주목한 최 감독은 노재욱을 KB손해보험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와 '스피드배구'의 중심에 세웠다. 3년 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실패를 맛봤던 외국인 선수 오레올(30·쿠바)은 탄탄한 수비력과 기복없는 플레이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리그 최고의 국내 선수였지만 잦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문성민은 주장으로 선수들을 다독이며 팀을 이끌었다. 센터 최민호(28)와 신영석(30), 레프트 박주형(29)과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38)도 제 역할을 해내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경기 전 "마치 소풍가기 전날 같은 기분"이라던 최 감독은 경기 내내 작전판을 들고 분주하게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취미로 중학교 수학문제를 푸는 최태웅 감독은 코치도 거치지 않고 덜컥 감독이 된 초보지만 부드러운 리더십과 예리하면서도 다양한 작전으로 성공시대를 열었다.

현대캐피탈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달 2일 열리는 삼성화재와 6일 최하위 우리카드전을 모두 승리하면 후반기 전승과 함께 프로배구 최다 연승 신기록인 18연승을 노릴 수 있다. 진짜 1위가 되는 챔피언결정전도 남아있다.

안산=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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