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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공방 이모저모] 나란히 앉은 朴-鄭 인사도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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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북 송금 의혹 사건 첫 재판은 오후 3시부터 세시간 남짓 진행됐다.

서울지법 309호 중법정은 재판 시작 30분 전에 1백50여명의 방청객으로 꽉 찼다. 피고인들과 관계없는 일반인도 보여 사건에 쏠린 관심을 반영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제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씨 등 지난 정부의 청와대 관계자 10여명도 자리했다. 현대 쪽 임직원도 상당수 자리를 지키며 법정 공방을 면밀히 지켜봤다.


대북송금 의혹사건의 첫 공판이 4일 서울지법에서 열렸다.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들이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왼쪽부터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임동원 전 국정원장·이기호 전 청와대경제수석·이근영 전 금감원장. 사진=김춘식·김성룡 기자

○…오후 2시30분이 조금 넘어 불구속 기소된 5명이 법정에 도착했다. 박상배.임동원.최규백.김윤규.정몽헌씨 순.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임동원.최규백씨는 정상적인 통로가 아닌 엘리베이터를 통해 바로 들어가 취재진을 따돌렸다. 나머지 세 사람도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이들을 기소한 특검팀은 오후 2시40분쯤 입정했다. 송두환 특검은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어 박지원.이기호.이근영씨 등 구속 피고인들이 들어서자 법정은 긴장감이 돌았다. 이들은 재판 시작 1시간20분 전인 오후 1시40분부터 2~3분 간격으로 호송버스를 타고 법원에 각각 도착했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다른 사건 피고인들과 섞여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세 사람 모두 검은색 양복에 흰색 셔츠를 입었다. 모두 굳은 표정이었지만 박지원씨만은 대기 중인 취재진에 잠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고인 8명은 피고인석에 두 줄로 앉았다. 앞줄에 김윤규.최규백.이근영.박상배.이기호씨, 뒷줄에 박지원.정몽헌.임동원씨가 앉았다. 이들은 서로 악수하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일부 방청객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뒷줄에 앉은 정몽헌씨는 앞줄의 현대 쪽 피고인들과 반갑게 눈인사를 나누었으나 옆에 있는 박지원.임동원씨와는 인사를 안해 어색해 보였다. 鄭씨는 왼편에 앉은 朴씨를 힐끗 쳐다보며 눈길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려는 눈치였다. 하지만 朴씨는 정면만을 응시, 鄭씨에 대한 심기가 편치 않음을 드러냈다.

○…이기호씨는 특검의 신문에 대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적극 변론에 나서다가 몇차례 제지를 받았다. 논리를 내세워 답변하다가 "질문 내용이 맞는지 간단하게 예, 아니요로 대답하고 자세한 내용은 변호인 신문을 통해 밝혀라"는 재판장의 요청도 받았다.

현대그룹에 대한 여신 지원이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설명을 계속할 때는 옆에 앉아 있던 박상배씨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며 만류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의 2억달러 송금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상관의 요구에 목숨을 거는'국정원 정신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당시 임동원 원장의 지시를 받아 일을 했다"고 밝히고 '송금이 외국환거래법 등에 위반되는지를 물었느냐'는 변호인 질문엔 "저희는 윗분 지시에 대해 절대 묻지 못한다. 불문율이다. 지시하면 이행할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당시 위법 사실을 알았다면 거부했겠느냐고 묻자 "못한다"고 못박았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상관이 요구하면 비합법적인 일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그런 각오로 살아왔다"고 강변했다.

○…가장 먼저 구속됐던 이근영씨는 재판부에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양쪽 눈 모두 백내장을 앓고 있으며 이번 수사의 충격으로 왼쪽 눈에 또 다른 병이 생겨 빨리 레이저 수술을 받지 못하면 실명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는 10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수술을 예약했다"고 밝혔다.

이어 왼쪽 복사뼈에 금이 가 6주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에는 깁스를 했다. "원래 수전증이 있었는데 이번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글씨를 쓰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다"고도 했다.

재판장이 "다리를 왜 다쳤느냐"고 묻자 "취재기자들에게 떼밀리는 과정에서 다친 것 같다"고 답했다.

강주안.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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