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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전라도 사투리로 쓴 '농부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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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좋은 시상 만내 농께 참말로 촌놈 용 됐구만요. 책을 다 맹글구요.(좋은 세상 만나서 정말 촌사람이 용됐습니다. 책을 다 만들고요)"

첫 쪽부터 마지막까지 순 전라도 사투리로 '오지게 사는 촌놈' 이라는 책을 펴낸 서재환(徐在桓.47)씨.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 청룡등 마을에서 23년째 농사를 짓고 사는 그는 4대가 한 집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얘기와 농사에 얽힌 일화, 한 마을 사람들의 삶 등을 4장 57편의 에피소드로 정리했다.

그는 "헐 지서리 없쓴께 노락질 삼아서 끼적거린 이약(할 짓이 없으니 놀이 삼아 쓴 이야기)"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면 절로 운율이 붙어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책 말미에 낱말의 풀이는 물론 용례와 표준어 해설을 곁들인 '농부의 사투리 모음집'을 붙였다. 부록인 '농부의 들꽃 사전'에는 "야들이라도 산천에 버투고 서 있쓴께 모진 세상에도 우리 엄니 아부지들이 전디고 온 거 아닌가 시푸다(이것들이라도 산천에 버티고 있으니 모진 세상에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견디고 온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그는 5일 오후 마을에서 책 발간 잔치와 함께 전라도 사투리 경연대회를 연다. 상품이 특이하다. 1등은 촌닭 한 마리, 2등은 매실주 한 항아리, 3등은 참깨 한 됫박을 준다고 한다. 그는 "우리 아부지.어무니가, 할무니.할아부지들이 노상 쓰고 살던 말이 사라져 가는 게 가장 짠하다(안타깝다)"고 말했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62.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씨는 "마치 살아있는 가족사를 읽는 기분이고, 이젠 거의 없어진 사투리까지 어디서 그렇게 많이 찾아냈는지 대단하다"고 평했다.

徐씨는 순천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고향에서 논밭을 갈며 틈틈이 이웃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전라도 사투리로 기록해왔다.

광양=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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