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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와 중기] “신기한 수학게임” 미국 70개 중·고교가 수업 활용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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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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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디지털 교육기업 ‘노리’의 김용재(오른쪽) 대표와 김서준 부대표. 이들은 미국 교육계에서 먼저 인정받은 다음 한국에 진출한 교육 벤처인이다. 중국과 일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사진 전민규 기자]

유명 수학 강사가 풀어주는 문제는 참 쉬워 보인다. 하지만 강사의 수업이 끝난 뒤 직접 풀어 보려면 뭔가 다르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하다. 결국 책을 덮고 잠을 청한다. 대한민국 수포자(수학포기자)가 걸어온 길이다.

김용재 대표가 만든 러닝SW ‘노리’
EBS서 정규 디지털 수학강의 채택
학원 강사하며 ‘수포자’ 많아 놀라
흥미 느낄 교육 알고리즘 개발 나서
학생 실력에 맞춘 문제설명·힌트
게임하듯 풀다보면 수학실력 늘어

 올해 EBS에 새로 등장한 ‘수학목표달성(수목달)’은 이 점에 주목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이차방정식이나 인수분해 같은 항목을 선택하면 ‘사람 선생님’이 원리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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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프로그램 ‘수학목표달성’에서는 문제를 풀다가 막힐 경우 콧수염 선생님이 나타나 힌트를 준다.

강의 다음엔 컴퓨터 프로그램인 ‘콧수염 선생님’이 나온다. 함께 문제 푸는 시간이다. 문제 난이도는 학생의 실력에 따라 변한다. 잘 풀면 어려워지고 틀리면 쉬워진다. 콧수염 선생님은 틈틈이 힌트를 알려준다. 화면에 문제풀이 동영상도 뜬다.

수업을 마치면 학생의 문제 풀이 능력에 대한 설명과 처방이 나온다. 12월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교사와 학부모에게 호평을 받은 덕에 1월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EBS 게시판엔 ‘온라인 수학의 정석’, ‘수학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서민을 위한 과외선생님’ 같은 호평으로 가득하다.

 수목달은 디지털 교육 업체 노리(Knowre)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례적으로 EBS가 먼저 노리에게 연락했다. EBS 프로그램이 된다는 말은 국가 공인의 의미다. 프로그램 공급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노리의 등장에 업계에선 ‘월드컵 첫 출전 팀이 곧장 본선 16강 초대장을 얻은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용재(38) 노리 대표는 “우리 교육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먼저 검증받았다”며 “실제로 미국 교실에서 사용하는 점을 EBS에서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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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리는 미국 기업이다. 하지만 회사의 기원은 2007년 서울 강남 대치동으로 봐야 한다. 서울대 건축과를 나와 외국계 금융사 컨설턴트로 일하던 김 대표가 그만두고 학원을 차린 시점이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수학교육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일반 고교생의 절반이 수포자였다.

 매년 15조원을 수학 사교육에 투자한 결과치곤 너무 초라했다. 김 대표는 "수학 사교육은 막대한 투자와 지속적인 실패의 반복이다. 누군가 자료를 모아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 교육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이런 대안을 제시하면 커다란 시장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치동 수학 학원은 창업 자금 마련을 위해 시작했다. 낮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엔 효율적인 수학교육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4000명 넘는 학생들을 지도하며 얻은 자료가 귀중한 자산이 됐다.

 2012년 그는 잘나가던 학원을 정리하고 8월, 미국 수학교사 6만여 명이 참가하는 필라델피아 수학교사연합회(NCTM) 콘퍼런스에 데모 프로그램을 들고 찾아갔다. 행사장 구석에 작은 부스를 마련했는데, 행사 내내 ‘신기한 수학 게임이 왔다’는 소문과 함께 인파가 몰렸다.

 자신이 생긴 김 대표는 같은 해 미국 법인을 만들고 프로그램 완성에 집중했다. 2013년 뉴욕시 교육청의 갭앱챌린지에서 1등을 했다. 갭앤챌린지는 학업성취도 격차를 메우는데 기여한 소프트웨어를 선정하는 행사다. 당시 블룸버그 시장에게 직접 상을 받았고, 뉴욕타임스에도 기사가 실렸다.

 미국 중·고교에서 문의가 쇄도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학교의 디지털 환경과 교사의 이해도를 살펴가며 프로그램을 공급했다. 34곳에서 시작해 지금은 미국 70개 중·고교가 노리를 사용 중이다. 현지 평가도 좋다. 노리를 도입한 고교에선 수포자가 크게 줄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브레이어 고등학교는 수학 낙제 학생의 50%가 대학 진학 최소 점수를 넘겼다. 이곳 수학 교사인 앨런 스피어는 “우리 학생들의 미국 수학 평가시험(MAP) 평균 점수가 8점이나 올랐다”며 “학생이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돕는 좋은 도구”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인정받은 덕에 한국 사업도 순조롭다. 까다로운 EBS 심사를 가뿐히 넘겼다. 지난해 6월부터는 대교의 전국 700여 개 러닝센터에서 스마트교육 프로그램 써밋 중등수학을 운영 중이다.

중국과 일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수학은 원리가 같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 낮은 편이다.

김 대표는 “한국을 넘어 세계 학생들의 수학 교육 표준이 되고 싶다”며 “수포자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글=조용탁 기자 ytcho@joongna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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