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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민음사 '요가'(19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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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한국의 대표적 문학 출판사인 민음사의 첫 책은 뜻밖에도 요가 책이었다.

민음사의 출판사 등록일은 1966년 5월 19일. 출판사로 등록은 해놓았지만 출판할 책을 찾지 못하던 젊은 시절의 박맹호(70.사진)사장에게 어느날 시인 신동문(1927~93)씨가 책 한권을 던져 주었다.

백수(?)처럼 일거리를 찾아 방황하는 박사장에게 원고를 주면서 "심심풀이로 한번 내봐"라며 권했던 것이다. 그 책이 일본의 오키 마사히로가 쓴 '요가'였다.

요가라는 게 생소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 신씨는 폐결핵을 앓았던 이력때문인지 요가에 관심이 많았고 본인이 그 책을 구해 직접 번역까지 해놨다. 신씨는 시인 김수영, 소설가 이병주씨와 단짝으로 지내던 인물.

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선기(風船期)'라는 시로 등단했던 신씨는 당시 신구문화사 편집주간을 지내고 있었다. 신구문화사라면 이어령.유종호 씨등 문단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곳. 문화계의 온갖 소식과 신조류가 그곳에 모일 수 밖에 없었다.

신구문화사를 꾸려 나가던 신씨도 출판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 신씨가 박사장에게는 동향(충북 청주)이자 출판계의 선배였다.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배가 안쓰러웠는지 신씨는 '동방구(東方龜)'라는 필명으로 본인이 번역한 '요가'를 들이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1년여만에 2만여부가 팔려나갔다.

1백 쪽이 겨우 넘는 얇은 책이라 단행본 꼴로 만드느라 일부러 하드바운드로 묶었다. 이 책이 잘 팔리면서 요가가 한국에 소개되고, 신문에서는 인도의 네루와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요가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기사까지 나와 한마디로 '요가 붐'이 일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박사장은 "민음사라는 출판사 이름은 정했지만, 회사의 방향, 출판 철학은 정립되기 전이었다"며 "첫 책에서 성공을 거두자 출판이란 게 쉽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다음 책에서 '요가'에서 벌었던 돈을 고스란히 손해봤다고 한다. 출판을 쉽게 여기다 큰 코 다쳤다는 것이 박사장의 이야기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오늘의 시인 총서' 등을 내며 문학 출판사의 면모를 다져가게 됐다.

그런데 책을 내게 해줬던 신씨는 93년 타계했다. 충북 단양에 내려가 독학으로 배운 침술로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다 정작 본인은 췌장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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