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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40대를 위하여’] 짜증나고 의욕 없나요, 취미 하나 만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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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70대 남성 사업가가 불안 증세를 호소했다. 불안이 얼마나 심한지 계속 손을 떨고 있었다. 불안한 맘에 어젠 잠도 못 이뤘다고 했다.

생존경쟁에 올인한 뇌는 불안·불통
열심히만 하면 성공하는 시대 아냐
문화 즐기며 소통·공감 리더십으로

 성공한 어르신의 불안엔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 자리에 올라왔는데 왜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좌절과 결핍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니 친구들과 화투 치며 술 한잔하는 것이 낙이라고 한다.

술과 화투 놀이처럼 뇌의 쾌락 시스템을 자극하는 활동이 잠시 불안을 잊게는 하지만 지속적인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다른 즐거운 취미를 갖는 것을 권하니 노력해 보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하신다. 생존만을 위해 달려오다 보니 뇌가 여유롭게 즐기는 것에 잘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국제시장’ 세대의 생존 후유증

기업체에 스트레스 강의를 나가보면 벽 뒤에 이런 내용의 슬로건이 붙어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멀리’. 생존을 위한 목표다.

 생존은 생물체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생존해야 그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생존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강력하다. 그 생존을 담당하는 것이 우리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 시스템이다. 스트레스 시스템은 위기관리 행동을 강화하여 생존을 유지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감정 신호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위기관리 행동을 강화하는 감정 신호가 불안이다. 과도한 불안이 문제이지, 불안은 그 자체가 병적인 증상은 전혀 아니다. 어찌 보면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 반응보다 더 중요한 원초적인 감정이다. 내 생존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생존은 어느 시대건 중요한 주제지만 생존에 무게가 더 실리고 집중되는 세대가 있다. 생물학적 생존 자체가 어려운 시기이다. 검색 사이트 지식 창에 보니 이런 질문이 있다. ‘보릿고개가 그렇게 힘들었나요.’ 지금의 40대 중년을 기른 부모들은 그렇게 힘든 시기에 생존을 위해 달리신 분들이다.

그 세대를 그린 ‘국제시장’이란 영화의 누적 관객 수가 1500만 명에 근접한다. 역대 2위의 기록이다. 영화의 비평적 평가를 떠나 국민 10명 중 3명이 그 영화를 봤다는 건 우리의 공유된 정서를 터치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감성 만족을 희생한 부모님의 모습에 전 세대가 뭉클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국제시장의 주인공인 아버지는 멋지고 좋은 아버지의 이미지는 전혀 아니다. 불통이고 고집 세고 삶의 여유도 없다. 주변과 갈등만 가득하다. 생존만을 위해 달리다 보니 생긴 후유증이다.

앞 사례의 성공한 어르신이 보이는 과도한 불안도 생존 후유증이다. 끝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며 달리다 보니 이제는 삶을 누려야 할 인생의 후반부에 오히려 불안이 더 치솟는 것이다. 놀고 싶어도 마음이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방전된 뇌, 삶의 의욕마저 저하

풍요의 시대를 누린 X세대, 지금의 40대는 국제시장의 아버지와는 다르다. 생존보다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희생적으로 열심히만 일하면 성공하던 시대는 저물었다고 한다. 밀어붙이는 파워 중심의 리더십에서 창조적 사고와 공감 소통이 강조되는 리더십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창조적 아이디어를 내놓으라 호통친다고 창조적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용만 창조이지 전형적인 밀어붙이기 소통이다. 창조와 공감의 리더십을 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뇌 안에 창조와 공감을 담당하는 회로가 작동하는 것이다.

 얼마 전 40대 변호사분이 짜증, 의욕 저하 등의 불편을 호소했다. 일할 의욕도 뚝 떨어지고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한테도 자꾸 거친 소통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비즈니스도 잘 안 풀리는 상황이었다. 소진 증후군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업무 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소진 증후군은 스마트폰도 장시간 사용하면 배터리가 나가듯 뇌의 에너지가 방전돼 버린 상태다. 우선 삶의 의욕이 저하된다. 그럴 땐 억지로 일해 무언가 이루어도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통도 거칠어지는데 공감을 위한 마음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기억력 저하, 불면증 같은 스트레스 증상도 함께 동반된다.

 그 변호사에게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 취미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스트레스는 주로 술로 풀었는데 요즘은 건강이 상해 술도 못한다고 말했다. 취미 생활은 일하기 바쁘니 꿈도 꾸지 못했지만 줄곧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 활동에 몰입하는 것은 단순히 여가를 때우는 행동이 아니라 뇌 안 충전 장치의 스위치를 켜는 좋은 전략이라는 걸 설명하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이 충전 장치가 앞에서 이야기한 창조와 공감을 담당하는 뇌 회로와 연동돼 있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잡기

그렇게 취미를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나자 누군지 몰라볼 정도로 표정이 밝아지고 젊어 보였다. 바쁜데 이런 취미 활동을 해도 되나 처음에는 불안감이 컸는데, 그 불안감을 누르고 그림도 배우며 화가가 된 듯 붓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다시 삶의 의욕도 오르고 부정적인 생각도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소통이 잘되고 비즈니스도 잘 풀리고 있다며 기뻐했다.

 앞의 예처럼 잘 노는 아빠들이 일도 잘 풀리고 가정에서도 사랑받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잘 노는 것도 경쟁력이다. 그런데 노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을 안 하는 것이 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능동적인 활동이다.

 잘 노는 것은 창조와 공감을 담당하는 뇌의 회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 회로는 문화를 즐기고 몰입할 때 강력하게 움직인다. 문화를 즐기며 잘 노는 능력도 일처럼 배우고 훈련을 해야 점점 익숙해지고 강력해진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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