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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하면서 눈물 보인 젭 부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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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을 마지막으로 대선 중도하차를 선언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평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부인 콜룸바(사진 뒤)가 박수로 남편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AP]

20일 밤 8시 40분(현지시간) 후보 사퇴를 밝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눈물을 애써 참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 두세 차례 목이 메기도 했다. 하지만 연설이 끝난 뒤 얼굴은 편해보였다.

자타가 공인하던 '부동의 차기 대통령 0순위'에서 지지율 5~7위의 군소후보로 곤두박질치면서 겪었던 마음고생과 중압감을 털어버린 듯 했다. 한 친구에게는 "이제 우리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겠군"이라고 말을 건냈다.

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90), 형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까지 총동원돼 '마지막 승부'를 걸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마저 1~3위 후보와 큰 격차의 4위로 끝나자 젭 부시는 바로 중도하차를 택했다. '부시 가문 3번째 대통령'의 꿈을 접은 것이다.

그가 올해 만 63세인 점을 감안하면 4년 후(67세), 혹은 8년 후(71세)에 다시 설욕에 나설 공산은 있다. 하지만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상처뿐인 선거를 치른 점을 감안하면 부시가문의 화려한 정치 역정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날 사퇴 연설을 하는 젭 부시의 바로 뒤에는 그동안 경선과정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부인 콜룸바까지 나와 남편을 위로했다. 콜룸바 역시 수차례 눈물을 훔쳤다.

젭 부시는 "이번 경선은 상당히 힘든 싸움이었지만 유권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우리나라의 통합을 위해 펼쳐 온 유세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어떤 잽 (펀치)을 날리든, '부시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고 누가 비난했든, 결국 아이디어와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경선이 트럼프나 테드 크루즈 후보 등의 선동적 포퓰리즘으로 흘러가 '정책'을 내세운 자신의 정통 선거전이 빛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그는 또 가족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게 영 부담이 됐던 듯 "끝까지 응원해준 부모님과 형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곤 사전에 준비한 사퇴문을 읽어내려갔다.

그가 경선 한 달도 안돼 참패를 인정하고 사퇴한 최대 이유는 이른바 '트럼프 현상'이다.

이번 경선의 최대 화두가 '반(反) 기성 정치세력(establishment)' 으로 굳어진 가운데 '부시 가문'은 '가장 완벽한 기성 정치세력'이었다. 어머니 바버라 여사가 지난해 젭 부시의 출마선언 전 "우리는 그동안 '부시'를 너무 많이 가졌다"며 출마를 만류했던 예언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로버트 슐레진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 논설실장은 "아버지·형이 대통령을 지냈고 40년간 미 정치권에 군림한 ‘부시 성’을 지닌 것만으로 젭은 이번 선거에서 '아웃'당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그는 출마 직후 무려 1억달러(1200억원)의 탄탄한 실탄을 걷으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유권자에게 감동과 흥분을 주지 못했다"며 '젭 부시'의 한계를 지적했다. 끊임없이 '화젯거리'를 만들어 낸 트럼프 쪽으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얌전한' 젭 부시는 '에너지가 부족한' 정치인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자신'보다는 '부시 가문'을 부각하고, 자신의 정치적 제자인 마코 루비오 후보가 부상하자 그를 집중 공격하는 등 '세련되지 못한' 전략을 취함으로써 유권자와 후원자가 등을 돌리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의 중도사퇴로 지지층이 겹치는 마코 루비오가 가장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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