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7호 27면

새해 들어 갑자기 무문관(無門關, ‘문이 없는 관문’이란 뜻으로 수행자들에게 주어지는 화두)에 들어온 수행자처럼 아무 할 말이 없어졌다. 세상 일이나 내 일이나 대단하게 보이지 않으니 그게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모를 정도로, 적당히 가라앉은 황토물 같은 느낌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마음공부’에 가서도 할 말이 없어지고, 또 내가 한 말이 입만 나불거리고 속이 없는 소리로만 여겨져 자책하곤 했다. 지도하시는 노장 스승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뭐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하려 하고 또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따지는 그런 생각 탓에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다. 모든 생각으로 만든 것들은 어떤 경험 하나로도 바꿀 수 없는 텅 빈 망상 포댓자루가 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이니 네 마음이니 하는 것들도, 긍정이니 부정이니, 착하니 악하니, 그럴 수 없니 있니, 또는 의리가 있니 정의가 없니 하는 말들도 모두 번뇌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가진 애착하는 물건도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도 있고, 나는 이 정도 사용했으니 당신이 더 필요한 것 같아 줄 수도 있고 또 정리를 할 수 있지만, 진즉 내 마음정리는 쉽게 되지 않는다. 잠 못 드는 사람을 보면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잠보다 생각을 좋아하는 중독증에 젖어든 것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다만 경험하는 것뿐이고 경험이 끝났으면 그것으로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비슷한 경험이 생길 때 마음이 연결돼 나타나는 현상을 살아야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내가 끌려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지난 것에 대해 평가하고 그것에 대해서 시비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도 알고 보면 쓸데없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번뇌에 헤매는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황토물이 흐려 있으면 ‘그렇구나’하고 알아차리면 되는 것이지, 이 흙탕물이 왜 흐려있을까, 누가 그랬는가, 틀림없이 누가 이렇게 휘젓고 갔을 거야 별별 생각을 한다. 그야말로 고달픈 생각을 우린 마음이라 한다.


설 명절을 지나고 법회에 참석했다. 후배 교무는 법문 중에 이렇게 좋은 기도문 읽어 주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말없이 누군가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먼길을 가다 잠시 멈추어 있어도 기도를 하는 것이다./ 촛불 하나만 밝혀 놓아도 기도하는 것이다./ 노을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이문재, 『오래된 기도』)


나는 여기에 한 구절을 덧붙였다. ‘내 삶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느껴도 열반과 해탈을 공부하는 기도인 것이다.’


법회를 파하고 길을 걸으며 생각해봤다. 나는 어떤 기도를 하며 이 봄을 맞이할까. 마음을 떠났던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그 영혼이 행복해질 거야 하는 기도가 되고, 지나온 삶의 헛발짓을 생각만 해도 유치하고 철없음을 치유하는 기도가 되며, 강가를 거닐며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강물에 떠내려 보내 다시는 오지 않게 하는 기도가 될 것이다. 내 삶에 기도의 가격이 없다. 스스로 자신이 누린 어설펐던 시간만이 기도처럼 맑게 서성인다.


정은광 교무dmsehf4438@hanmail.ne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