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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좋았던 기억을 되살리는 마법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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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몬드 제인의 창업자 린다 필킹턴이 작업실에서 향수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에게 향수 제조 과정은 과거의 경험으로 가득 찬 여행과 같다(왼쪽). 오몬드 제인의 매장은 검은색의 벽과 유리로 된 진열장, 오렌지색 포장상자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붉은 기 도는 금발 머리에 흰 가운을 입은 린다 필킹턴은 매력적인 의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방법은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전환을 위한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영국 런던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한다. 맞춤 향수 제작이 사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오몬드 제인(Ormonde Jayne)이다. 난 10년 전 향초를 사려고 돌아다니다가 그 상점을 발견했다. 내가 원하는 향은 있었지만 양초의 크기와 모양은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주문을 했다. 48시간 뒤 필킹턴은 심지 3개가 꽂힌 들통 크기의 향초를 완성했다. 덕분에 난 향기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영국 런던의 향수 전문점 오몬드 제인, 세계 각 지역의 특성 살린 이국적인 향으로 주목 받아

그 후 난 올드 본드 거리 근처 로열 아케이드에 있는 그 상점의 단골이 됐다. 검은색의 벽과 유리로 된 진열장, 오렌지색 포장상자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냈다.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디자이너 핼스턴과 함께 아편굴을 설계했다면 이런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향기는 물리적으로 작용하지만 추상적이기도 하다. 일련의 분자가 엮여서 후각 신경과 상호작용해 뇌 속에서 아이디어나 생각보다 덜 구체적인 뭔가를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마법이다. 물론 좋은 향에 한해서 말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바디 미스트에 거부감을 느끼진 않는다. 링스 이펙트나 ‘대중용 명품(masstige)’을 내놓는 고급 브랜드의 제품이다. 하지만 후각은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향을 만들기는 어렵다.

오몬드 제인의 향수는 매우 다양한 향을 낸다. 필킹턴에게 향수 제조 과정은 과거 경험으로 가득 찬 여행과 같다. 그녀의 향수는 매우 이국적이고 인상적이어서 런던 리전트 파크 근처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진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정도다. 오몬드 제인 매장에서 필킹턴이 뿌려주는 신제품 향수의 향을 맡고 있노라면 잠시 휴가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이 든다.

난 그럴 때면 요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소설 ‘역로’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자기 집에 앉아서 과거 여행 중에 맡았던 냄새와 그때의 감흥을 되살리려고 하는 부분이다. 필킹턴은 늘 멀리 있는 농장이나 과수원, 수목원에 찾아가서 귀중한 진액을 구해 갖고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그녀는 침향(oudh)에 매료됐다. 오랫동안 중동이나 동남아 지역에 알려진 수지 향이다. 필킹턴은 태국에 갔을 때 방콕의 아랍인 지역인 나나에 침향 상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 ‘레이더스’와 ‘천일야화’에나 나올 법한 경험을 하게 된다. “왁자지껄한 방콕 시내에서 길모퉁이 하나를 돌았을 뿐인데 사람과 상점, 식당들이 온통 중동 분위기 일색인 동네가 나와서 매우 놀라웠다.”

“상점 밖에는 대형 리무진들이 주차해 있고 주변에 보디가드들이 대기 중이었다. 안쪽에서는 상인들이 중동에서 온 바이어에게 다양한 형태의 침향 제품을 보여주면서 흥정을 했다. 값비싼 유액은 잠금장치가 있는 금고에 보관하고 말린 침향나무는 유리 진열장 안에 자물쇠를 채워 보관했다. 품질이 낮은 침향 유액은 향(incense stick)으로 만들어 곳곳에 쌓아 뒀다.”

난 필킹턴이 들려주는 침향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향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오리스 누아르(Orris Noir)’다. 좋은 향수에 관해 논할 때 내가 뿌리고 다니는 이 향수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다. 그녀가 만든 향수 대다수가 그렇듯이 이 제품도 주원료(검은 자줏빛의 아이리스 꽃)에서 이름을 따왔다.

‘챔패카(Champaca)’는 인도에서 나는 오렌지색의 작은 야생화 챔팩이 주원료다. 또 ‘삼파귀타(Sampaquita)’는 자스민의 일종인 필리핀의 국화 삼파귀타를 주원료로 만들었다. 타이프(Ta’if)는 사우디 도시 타이프의 해발 1900m 고지에서 자라는 아라비아의 장미에서 영감을 얻었다. ‘톨루(Tolu)’는 남미가 원산지인 한 나무에서 채취한 수지에서 이름을 땄다. 이 유액들은 비슷한 지역에서 나는 다른 원료들과 혼합된다. 챔패카는 녹차와 바스마티 쌀의 향을 더해 인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또 타이프에서는 그 지역의 장미 재배업자들이 즐겨먹는 대추와 오렌지의 꽃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오몬드 맨(Ormonde Man)’의 원료(독미나리가 포함돼 있다)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그 향을 맡아보니 좋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크라테스가 동료 아테네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마신 독약이 맛에 비해 향이 훨씬 더 좋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게 돼 얼마나 다행인가!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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