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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 벤자민 프랭클랜의 위기, 고액권 폐지 주장 이는 글로벌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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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위기 아닌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의 '얼굴'이 인쇄돼 있는 100달러 지폐 이야기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0달러 고액권 폐지 주장을 담은 전 미국 재무부장관 출신의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현존하는 고액권을 없애긴 어렵지만 새 고액권 발행을 유예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500유로권 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며 시작된 고액 화폐 폐지 논의가 미국으로 옮겨간 셈이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도 100달러 지폐를 없애야 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을 워싱턴포스트 블로그에 올리면서 고액권 폐지론을 펼쳤다. 1986년 재무부가 위조 방지 화폐 도입을 하던 당시에 에드워드 코치 뉴욕 시장이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마약 범죄 소탕을 위해 100달러 화폐 폐지를 주장한 것이 100달러 폐지 주장의 시작이었다.

그는 500유로짜리 지폐가 발행되던 1990년대 후반 자신이 "부패와 범죄를 조장한다"며 고액권 발행을 반대했던 일화를 설명했다. 그는 "일각에서 500유로 지폐에 대해 '빈 라덴'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면 왜 고액권에 반대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버드대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현대 기술발전으로 합법적인 거래에선 과거처럼 고액권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고액권이 통용되는 것은 마약거래와 테러자금 등 범죄와 연관된 불법 거래란 설명이다.

보고서는 100스위스프랑과 500유로, 100달러 지폐와 같은 고액권 폐지는 탈세와 마약상, 테러리스트, 금융범죄자를 억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머스 교수는 "유럽이 움직이면 스위스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유럽은 고액 화폐 발행을 중단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서도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액권 폐지 논란에 힘을 싣는 것은 세계 중앙은행들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다. 시중에 돈을 많이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로 각국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효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장롱 안과 지하경제로 숨어드는 고액권 때문이란 것이다. 1994년 만해도 유통되는 100달러는 2290억 달러 규모였지만 지난해 말 기준 1조3800억 달러의 현금이 글로벌 시장에 유통되고 있으며, 이 중 100달러 화폐는 1조8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17명에 달하는 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나 12살엔 인쇄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 '자수성가'한 인물로 꼽힌다. 정규 교육은 2년밖에 받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프랑스 대사로도 활동했다. 미국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 중 대통령이 아닌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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