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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출근 않고 실업급여 350만원…적발자 33명 중 가정주부 27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2년 3월 충남 천안에 사는 최모(32·여)씨는 단골 미용실에 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32·여)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주민번호만 빌려주면 몇백만원을 벌게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건설회사에서 경리로 일했던 이씨라 믿을만 했고 손해 볼 게 없다고 판단해 개인정보를 선뜻 건넸다.

최씨의 개인정보를 받아든 이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건설회사 하청업체 현장소장 김모(48)씨에게 자료를 넘겼다. 김씨는 최씨가 공사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것처럼 근무일지를 꾸미고 건설업체도 이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건설업체는 최씨가 실제로 근무 중이라고 고용노동청에 전산을 등록했다. 최씨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 현장소장 김씨는 급여를 지급하는 것처럼 송금한 뒤 돈을 빼내 회식비로 사용했다. 일부는 비자금으로 썼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1년 뒤 최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허위지만 서류에는 버젓이 근무한 것처럼 기록이 남았다. 최씨는 이를 근거로 고용노동부에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3개월간 최씨가 받아낸 금액은 350만원. 단 하루도 출근하지 않았지만 몇백만원의 돈을 챙긴 것이다.

최씨처럼 취업과 실직을 한 적이 없으면서도 서류를 위조해 실업급여를 받은 수급자, 이들과 건설업체를 연결해준 브로커 등 56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대전 중부경찰서는 17일 허위 근로자를 모집해 실업급여를 받게 준 혐의(고용보험법 위반 등)로 브로커 강모(32)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부정하게 실업급여를 챙긴 수급자 33명과 서류를 만들어 준 건설업체 대표 이모(34)씨 등 회사 관계자 20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부정수급자 33명 중 여성은 27명으로 가정주부가 18명이었다. 이들이 2010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타낸 실업급여는 2억2000만원에 달했다.

조사 결과 현장소장인 친척인 브로커 강씨는 주부들이 자주 모이는 미용실 등을 돌며 “6개월 이상 일한 것처럼 서류를 거짓으로 고용노동청에 제출하면 실제 일을 하지 않고서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꾀였다. 이어 건설업체와 짜고 이들을 실제 고용하지 않고도 일을 한 것처럼 꾸민 고용보험 서류를 작성했다.

건설업체 대표들은 서류상으로 근로자 수를 늘리면 인건비 지급에 따른 세금 공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브로커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거짓으로 서류를 작성해도 고용노동부가 실제 근무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했다. 경찰은 이같은 수사결과를 고용노동청에 통보, 3억5000만원(과징금 포함)을 환수 조치했다.

박기천 대전중부경찰서 수사과장은 “부정수급자가 브로커와 현장소장에게 사례비를 건넨 정황을 추가로 수사 중”이라며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저지른 조직적 범죄”라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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