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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 사용설명서] 치매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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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이번 주 커버스토리에서는 치매에 대해 다뤘습니다. 65세 이상 열 명 중 한 명이 앓고 있다는 치매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발병률이 높아져 80대가 되면 세 명 중 한 명꼴이 된다고 합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합니다.

 30~40대는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60~80대는 자신들이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합니다. 많은 이들이 치매를 두려워하죠.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원래의 인격이 사라지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치매를 마냥 무서워할 건 아닙니다. 취재 결과 조기 치료를 하면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고 종류에 따라서는 완치도 가능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치매에 대해 너무 모른 채 두려워만 하는 건 아닐까요. 암도 잘만 다스리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치매 역시 일상 속에서 함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병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책 『사는 게 뭐라고』는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60대에 쓴 일기 형식의 글입니다. 그는 2010년 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죠.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일주일 전에 노인 병원에 가서 세 차례나 치매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성격 좋은 도련님 같은 의사다. 내 마음은 ‘풋내기 녀석, 네가 인생에 대해 뭘 알아? 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시계나 연필 따위를 여섯 개 정도 늘어놓은 뒤 그것들을 감추었다. 장난 같은 질문을 여섯 개쯤 받았다. 병원에 세 번을 갔는데 세 번 다 길을 헤맸다. 확실히 노망이 나려한다. 만약 초기라도 치매가 시작되었다면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돈 계산이나 내가 들어갈 요양원 수속 등을 끝내야 한다. 홀몸은 남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

 실제로 치매 검사는 이렇게 유치원생에게나 물어볼 만한 것들을 물어본다고 합니다. 이런 검사를 받고 기분 나빠하는 건 치매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60세 이상이 되면 이런 유치한 검사지만 정기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 수 있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힘들지 않게 됩니다.

 제 친할머니도 심한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집에 오신 건 치매가 아주 심해지신 다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고 계셨죠. 저희 가족들, 특히 어머니는 할머니 수발에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가끔 손녀인 저를 알아보실 때면 ‘공부 잘하고 있지’라며 다정하게 웃어보이시곤 했습니다. 치매 전문가들은 환자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는 게 치매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다시 작가 사노의 이야기입니다.

 ‘노망은 인격이 파괴되어서 치매라고 인정되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인격이라고 부르는 걸까. 치매 환자를 두고 예전의 훌륭한 그가 아니다, 인격이 바뀌었다.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변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린 주름투성이의 갓난아기 같은 엄마를 외계인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어른이 되었고 아기를 낳아 기르고, 화내고 울고, 고함치고 웃고, 며느리와 서로 으르렁거렸던 엄마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엄마는 역시 같은 사람이다’.

 평생 자식을 위해 애쓴 부모님이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부모님이 아닌 건 아니고,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인 거죠. 그러니 치매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이좋게 살아가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겠습니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 park.hy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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