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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기어, 마돈나, 나오미 캠벨 … 그들을 빛나게 한 그 남자가 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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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8 면

허브 릿츠가 1986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찍은 ‘마돈나’(트루블루 프로필). 마돈나는 이 사진을 앨범 재킷으로 사용해 섹시하면서도 고혹적인 이미지를 얻었다.

마크 맥케나 허브 릿츠 재단 회장(왼쪽)과 큐레이터 프랭크 콘시딘. 각자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은 때로 시대를 정의한다. 우리는 한 시대를 누가 다스렸나 하는 구체적 사실을 넘어 하나의 장면으로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1980년대는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나날이었고, MBC 대학가요제에서 탄생한 숱한 스타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저 멀리 바다 건너 미국 할리우드는 어땠을까.


그들도 새로운 스타에 열광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원조 꽃미남’ 리처드 기어가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신디 로퍼와 마돈나가 ‘섹시 디바’의 타이틀을 두고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 빚을 졌다. 바로 사진작가 허브 릿츠(Herb Rittsㆍ1952~2002)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들을 때 그가 찍은 사진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의 이름이 좀 낯설다고 지레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시작된 전시 ‘마돈나를 춤추게 한 허브 릿츠’(2월 5일~5월 2일)를 보면 우리가 어디선가 보았던 사진이 바로 그의 작품임을 알게될 테니 말이다. 지난 4일 국내 첫 전시를 위해 방한한 허브 릿츠 재단 마크 맥케나(50) 회장과 큐레이터 프랭크 콘시딘(51)과 함께 작품들을 둘러봤다. 허브 릿츠와 10여 년간 함께 일한 수석 어시스턴트 출신인 이들로부터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었다.

1978년 캘리포니아 남부 도시 샌버너디노로 떠난 여행에서 담은 ‘리처드 기어’(카 위드 타이어)의 모습. 신인배우와 세일즈맨이었던 두 친구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일약 톱스타와 스타 사진작가로 거듭났다.

주유소에서 찍은 리처드 기어 사진, 패션지 표지 장식 경제학을 공부하고 아버지의 가구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던 허브 릿츠가 사진계에 몸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1978년 친구와 떠난 여행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사막으로 향하던 그들은 바람이 빠진 자동차 바퀴를 교체하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담배를 입에 물고 두 손을 머리에 올린채 서 있던 친구의 모습을 보고 허브는 바로 셔터를 눌렀다. 취미로 사진을 찍어온 애호가이자 사진 수집가로서 발동한 직감 덕분이었으리라.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친구는 이를 홍보 담당자에게 전달했고 이 사진은 패션 매거진 보그ㆍ에스콰이어ㆍ마드모아젤을 장식했다. 허브 릿츠가 사진가로서 첫 단추를 뀀과 동시에 신인배우 리처드 기어가 섹시한 꽃미남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전시의 포문을 여는 이 작품 앞에서 마크 맥케나 회장은 “이는 허브가 찍은 첫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의 작품 세계를 암시하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유명인사들은 스튜디오나 세트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자연광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색하게 여겨지는 때였죠.”


또 하나의 포인트는 감각적인 아름다움. 프랭크 콘시딘 큐레이터가 자연스레 말을 이어받았다. “이전까지 섹슈얼리티는 여성의 전유물이었지만 허브는 남성도 충분히 섹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이후 대중문화에서도 주요한 흐름이 됐죠. 하지만 그의 사진이 뛰어났던 점은 한쪽 성에 치우친 섹슈얼리티보다는 양쪽 모두를 균형있게 담아내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데 있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이처럼 그에게 핸디캡이라기 보다는 장점으로 다가왔다. 성별 등 눈에 보이는 차이점보다는 모델 본연이 가진 특징에 포커스를 맞췄다. 크리스토퍼 리브나 스티븐 호킹의 경우에는 그들의 장애를 굳이 감추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초상화에는 반드시 얼굴이 나와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예술가라면 그의 작품이 곧 얼굴이 될 수도 있고, 마이클 조던이라면 뒷모습이 그가 누구인지 보다 잘 전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사진은 나오지 않을 수밖에.

허브 릿츠는 인물 사진을 찍을 때도 얼굴보다는 그 사람의 특징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것이 훨씬 더 실제에 가까운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모델 ‘나오미’(1989)ㆍ배우 ‘잭 니콜슨III(1988)’ㆍ‘니콜 키드먼’(1999).

마돈나 옷 벗게 한 작가 … 10번 찍으면 10번 다 달라 이번 전시는 ‘할리우드’ ‘패션’ ‘누드’ 등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하지만 굳이 그 구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 여는 첫 전시이기에 다양한 분야의 사진들을 골라오긴 했지만, 전시를 기획한 이들조차 한 사진을 두고 이 사진을 어느 부분에 넣는 게 나을지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보다는 오히려 인물 사진이 어떻게 패션 사진에 영향을 미치는지, 누드는 어떻게 패션이 될 수 있는지, 그 아래 흐르고 있는 바탕을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가장 좋은 예는 마돈나와 나오미 캠벨이다. 마돈나는 직접 허브 릿츠를 찾아온 케이스다. 당시 마돈나는 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얻었지만 신디 로퍼를 흉내내다가 한 번의 실패를 맛 본 상태였다. ‘라이크 어 버진’(1984)으로 화려한 금발의 요염함을 얻은 그녀는 ‘트루 블루’(1986)로 섹시 디바 자리 굳히기에 나선다. 허브의 재킷 사진으로 섹시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를 얻은 그녀는 ‘체리쉬’(1989)의 뮤직비디오도 그에게 맡기며 함께 새로운 영역 탐사에 나선다.


맥케나 회장은 “두 사람은 특히 함께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고 회고했다. “허브는 결코 사진을 미리 구상하는 법이 없었어요. 모델에 대해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고 미리 판단하는 것도 경계했죠. 바로 그 날, 그 순간의 피사체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욱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돈나는 허브를 두고 ‘말만으로 내 옷을 벗기고, 바보처럼 춤추며 뛰놀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두 사람은 10번 찍으면 10번 다 다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그의 사진을 보면 산 페드로의 극장에서 찍은 장난꾸러기 마돈나와 LA에서 촬영한 보그 화보에 담긴 고풍스런 마돈나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서로를 향한 믿음과 두 사람의 재능이 함께 빚은 결과다.


반면 나오미는 허브 릿츠가 발굴한 진주다. 흑인 모델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그녀의 누드 사진을 낯설어 했다. 그녀를 찍은 사진은 흑백의 대비가 너무 분명하단 이유로 거절 당했다.


하지만 허브는 사진 톤을 변경해서 다시 밀어붙였고, 이후 나오미는 흑인 여성 최초로 타임·보그 등의 표지를 장식했다. 피부색이나 성별보다는 그 속의 ‘아름다움’에만 온전히 집중한 또 하나의 성과였다.

친구네 집 수영장에서 찍은 ‘워터폴IV’(1988). 물과 빛과 움직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베르사체 드레스’(1990)와 ‘점프’(1987) 역시 허브 릿츠가 중시한 역동성과 균형미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예술이 된 누드 사진 … “사진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이다” 인물 사진에서 그의 즉흥성이 도드라졌다면, 자연광과 중성적 매력은 누드 사진에서 한층 더 탁월하게 드러난다. 비록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지만 대학 시절 배운 고전 미술과 미학에 대한 이해로 그는 보다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콘시딘 큐레이터는 1990년 촬영한 베르사체 드레스를 그의 작품 중 정수로 꼽았다.


“이 사진엔 허브가 평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다 들어있어요. LA에서 태어난 그가 사랑했던 캘리포니아의 사막은 물론 빛과 바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한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나죠. 베르사체의 의뢰를 받은 광고 사진이지만 그의 예술철학이 깃든 그리스 여신처럼 보이지 않나요?”


맥케나 회장이 고른 가장 좋아하는 작품 역시 할리우드에서 찍은 누드 작품 ‘워터폴’이었다. “허브가 빛만큼이나 관심을 가졌던 게 바로 물이에요. 친한 친구 집에 있는 개인 수영장이었는데 빛이 좋아서 종종 사진을 찍으러 갔던 곳입니다. 작은 워터폴이 수영장 위로 떨어지는 구조인데 물이 갖는 힘뿐만 아니라 그 질감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이들이 꼽는 허브 릿츠의 사진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단순함(Simplicity)ㆍ우아함(Elegance)ㆍ빛의 감각(Sense of Light) 등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다가 맥케나가 이렇게 정리했다. “아마도 사진이 스스로 이야기한다는 말이 가장 맞을 것 같아요”라고.


“허브의 유언에 따라 우리가 재단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그는 생전에 사진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진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진이 당신에게 직접 이야기할 것이라고 답했죠.”


콘시딘은 인터뷰 내내 허브의 사진관을 강조했다. 그가 사진을 ‘찍는(taking)’다기 보단 ‘기록하는(recording)’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듯 하다. 그가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는 2002년 12월 벤 에플렉과 함께 사막에서 촬영을 하다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을 얻어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됐지만, 이 작업은 2003년 3월 베니티페어의 표지로 나왔다. 순간을 중시했던 사진가답게 한 순간에 영원히 담기게 된 셈이다. 그는 수많은 희대의 아이콘들과 함께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허브 릿츠 재단ㆍ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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