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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男男간에 생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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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태평양을 끼고 서 있는 아름다운 금문교.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언덕을 오르는 빨간 전차. 동화 속의 도시 같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호텔에서 S대 출신이며 라스베이거스 어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한국인 K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시큰둥한 반응뿐.

거지꼴의 나를 젖혀두고 K가 관심을 두는 상대는 키아누 리브스처럼 생긴 호텔 프런트 매니저였다.

"나이가 몇이죠? 대학은 나왔나요? 결혼했어요? 아, 이혼했다고요. 그럼 아이는 있나요? 현재 사귀는 애인은 없고요? 한달 월급은 얼마죠?"

내심 같은 한국인으로서 무척 창피했다. K의 영어실력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무례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그릇된 매너 때문이었다. 배운 영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기특(?)했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외국인들은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불쾌히 여긴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떠나기 전날 저녁, 매니저와 함께 외출하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K. 그는 진지한 모습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 게이 같아요?"

모든 상황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매니저가 종일 말을 걸어오는 K를 웃으며 받아줬던 이유. K가 자신과 같은 게이이며, 자신에게 매우 관심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 분명했다. "내일 떠난다"며 섭섭한 표정을 짓는 K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자,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집에서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제안은 곧 '밤을 함께 보내자'는 초청임을 왜 몰랐단 말이냐!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는 진보적인 도시이며, 아울러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거리에서 진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동성 커플이나, 그들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이 내걸린 카페가 흔하다. 매년 6월이면 성대한 동성애 축제가 열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열혈 동성애자와 인권 운동가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정을 듣고 난 투숙객들 왈, 늘 매니저 옆에 붙어 있는 K 역시 당연히 게이인 줄 알았다 한다. 두 사람이 다정히 차를 타고 사라지기에 '음. 드디어 오늘밤 역사가 이루어지는 군!'하고 생각했다는데.

어느 쪽을 동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토론 한판! 자신이 K의 일편단심 사랑의 대상이 아닌 영어 연습 상대였음을 깨닫게 된 매니저인가? 아니면 "사랑하자"며 덤비는 매니저에게 혼비백산한 K인가?

매너 좋은 매니저, K를 얌전히 보내줬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K, 남의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묻는 무례한 태도만큼은 확실히 고쳐지지 않았을까? 이후 한동안 아프다고 결근한 매니저. 정말 몸이 아팠을까, 아니면 실연의 상처였을까?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심 아쉬웠다. 매니저가 출근할 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나?

조정연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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