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북 강공 때 지지율 오른 박 대통령, 4월 총선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사 이미지

박근혜(얼굴) 대통령과 북한. 북한과 남한 선거. 선거와 박 대통령. 세 쌍의 단어는 묘한 2인3각 관계로 얽혀 있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출범 12년 만에 처음으로 멈춰 세웠다. 4·13 총선을 두 달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다.

2013년 북 개성공단 조업 중단
박, 양보 안 하자 국내 여론 찬성
작년 확성기 재개에 지지율 반등
97년부터 선거에선 북풍은 미풍
“보수 결집” “불안 확산” 전망 갈려

사실 ‘정치인 박근혜’로만 볼 때 박 대통령과 북한 관계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2002년 5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던 박 대통령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사실상 대북특사’란 평가도 나왔다. 어떻든 재선 의원이던 박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은 김정일 면담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한 뒤 2004년 당 대표를 거쳐 대선주자가 되면서 북한과의 악연이 시작됐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박 대통령의 방북 경험이 당내에서 공격 포인트가 됐고 지지율도 하락해 대선후보 경쟁에서 1등 자리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내줘야 했다. 경선이 본격화한 2007년 6월엔 김정일과의 조작 사진까지 유포돼 곤욕을 치렀다.

기사 이미지

악연은 계속됐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취임 2주일을 앞두고 3차 핵실험(2013년 2월)을 감행했고, 취임 2개월여 만엔 한·미 연례군사훈련을 트집 잡아 개성공단 근로자를 철수시켜 버렸다.

박근혜 정부가 그때마다 대북 강경 모드를 고수해온 것은 과거 경험에서 나온 선택일 수도 있다.

고려대 남성욱(북한학 ) 교수는 “개인 간 신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은 국제 외교 관계에서 접근해야 할 대북 문제도 신뢰란 관점에서 보고 있다”며 “북한의 도발도 신뢰를 깬 ‘배신’으로 간주해 더 강경 대응해 온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 강공책은 국내 정치적으론 효과가 있었다. 2013년 개성공단 조업 중단 사태 때 박 대통령은 5개월을 양보 없이 버텼다. 국내 여론은 “찬성” 71% 대 “반대” 21%(2013년 7월 29일 한국갤럽 조사)였다.

지난해 8월 북한이 목함지뢰 도발을 했을 때도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강수(强手)를 뒀다. 그러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파문으로 인해 30%대까지 떨어졌던 국정운영 지지율이 40%대로 복귀했다.

공교롭게 총선이 코앞인 때 북한이 도발하고, 박 대통령이 역시 초강수로 대응하면서 다시 북풍(北風)이 선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987년 대선 직전 불거진 KAL기 폭파사건을 비롯해 북풍은 늘 남한 선거와 함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선거엔 북풍이 큰 힘을 쓰지 못하는 분위기다.

9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재미동포 윤홍준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대중 후보와 북한 고위 인사 간 커넥션이 있다”고 주장한 데 이어,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씨가 평양방송에 나와 김대중 후보를 언급한 영상이 공개됐으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사건 석 달 뒤 지방선거에서도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했다.

'북풍'이 흔든 대한민국 선거판
① 2010년 총선, 57일 만에 뒤집어진 7.28 표심
② 2007년 대선 땐…박근혜·이명박 지지자 사이, 인터넷 전쟁

이번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미지수다. 개성공단 사태를 초래한 것은 국제사회가 반대하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다.

인천대 이준한(정치외교학 ) 교수는 “(한·미 관계) 손해까지 감수하며 중국에 집중해 왔는데, 남북관계에서 손에 쥔 게 하나도 없는 것이 정부의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란 초강수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햇볕정책의 결정체인 개성공단 중단은 전 정권 대 현 정권이란 정치적 대결 구도 부활로 직결된다”며 “청와대가 이런 구도를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의식은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11일 곧바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남북관계 전면 차단이자 냉전시대로의 회귀”(김성수 대변인)라는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 프레임에 발을 들여놓았다.

반면 개성공단 자체에 대해선 그간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49.5%)이 “폐쇄하자”(19.6%, 지난해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보다 컸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는 보수층을 묶을 만한 이슈지만, 동시에 ‘정부가 북한 관리에 실패했다’는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이슈”라고 지적했다.

남궁욱·박유미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