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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지키려 행정단위 허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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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야 의원들이 2일 전격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은 전형적인 '게리맨더링 법안'이다. 현직 의원들이 기득권을 악용해 자기 입맛에 맞게 선거구를 조정하지 못하도록 한 선거법의 근거조항(25조)을 아예 들어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게리맨더링은 시.군.구의 행정단위를 기준으로 설정된 광역 선거구를 갑구.을구 등으로 나눌 때 해당 의원들 사이에 경계선을 교묘하게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의 개정안은 행정 단위 경계 기준 자체를 허물어 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인구 축소로 선거구를 잃게 될지 모를 의원들이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를 들어 법안의 대표제출자인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의 산청.합천 선거구(9만7천여명)와 민주당 박상천 의원의 고흥 선거구(10만1천여명)는 인구 미달로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회 내 별도로 설치된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인구 하한선 기준을 10만5천~11만명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급격한 이농(離農)현상으로 인구가 기준 밑으로 떨어진 농촌지역 의원들은 백방으로 선거구 획정 기준 등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

그러나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비율을 3대1 이하로 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다 국회의원 정원 증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구 하한선을 내리는 방안은 실효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선거구 획정을 10년마다 실시하도록 돼 있어 이미 활동에 들어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무의미해질 것이란 지적마저 나온다.

법안에 서명한 한 의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행정단위를 허무는 선거구 획정은 일반화돼 있다"고 강변했다.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란=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상식이나 원칙과 무관하게 멋대로 고치는 행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가 1812년 시도했다. 당시 선거구가 샐러맨더라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 모양이어서 게리맨더링이란 조어가 생겼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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