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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설 공약 선물 뜯어보니, 8개 중 6개가 재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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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원회 의장은 4일 총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야당은 ‘더불어 성장’ ‘공정 성장’ 같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성장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공약은 구체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서민 부담 완화 총선 공약 발표
간병비 완화 정책은 이미 시행 중
취약층 통신기 지급, 서울시와 유사
새로운 건 신불자 재기 지원 확대뿐
“입법 방향·가치 제시 공약 나와야”

하지만 이날 새누리당이 1차로 발표한 공약 ‘가계부담 완화를 위한 새누리의 약속’은 ‘재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개 공약 가운데 7개가 기존 정부안을 활용했거나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정책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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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설 전 국민께 따뜻한 생활밀착형 공약 선물을 드린다”며 발표한 8개 공약 중 4개는 보건복지 분야였다.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하루 7만~8만원에 이르는 간병비 부담을 1만~2만원으로 낮추는 안이었다. 이미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포괄간호서비스’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었다.

김 의장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이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간호인력이 지금의 두 배로 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유휴 간호인력 재취업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이 소유한 자동차에 대해 건강보험료를 매기지 않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역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보고한 내용이었다.

경력 단절 전업주부가 퇴직 후 국민연금을 계속 납입할 수 있도록 한 공약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2016년 경제정책 방향’에 들어 있다. 치매 노인과 장애인 2만 명에게 스마트 통신기기를 지급해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족이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공약은 서울시의 기존 계획과 유사하다는 말이 나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1~2급 시각장애인에게 몸에 착용 가능한(웨어러블·wearable) 카메라 보급 계획을 발표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관료 선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선거는 ‘정치가 필요 없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 금융 지원 공약도 같은 지적을 받았다. 신용등급이 낮아 일반 은행의 대출을 받지 못하고 대부업체를 이용해야만 하는 서민을 위해 만든 금리 10%대 대출 서비스 공약은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게다가 이 서비스의 연체율은 2.29%(가계신용대출 0.6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금융위원회가 수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취업 통합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민금융진흥원’ 설립 공약도 관련 법률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도 지금의 초등학교 돌봄교실과 대학생 지식봉사활동에 대한 확대안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새로운 것은 신용불량자의 월 급여에 대한 금융권의 압류 금지 최소액을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높이는 공약 하나였다. 하지만 이는 국회가 법률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 법무부가 시행령만 고치면 가능하다.

김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는 “행정부 정책과 공약이 차별화되지 않는다”며 “입법의 방향과 가치를 제시하는 공약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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