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폭증 땐 차단 권한 부여”…EU 양보안, 브렉시트 막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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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럽연합(EU)에 잔류 또는 탈퇴(브렉시트·Brexit)할 지 결정할 ‘정치 기계’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일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EU 집행위원회 사이의 합의 초안이 나왔다.

캐머런·EU집행위 합의 초안 내놔
영국, 6월께 탈퇴 묻는 국민투표

캐머런 총리는 EU와의 협상을 통해 영국 잔류를 위한 보다 나은 조건에 대해 합의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하며 지난해 12월부터 본격 협상에 나섰다.

EU 집행위가 공개한 합의 초안에 따르면 이민자가 폭증할 경우 영국 정부가 이민을 중단시킬 수 있는 일종의 ‘브레이크’를 갖게 됐다.

또 이주 노동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4년까지 유예 또는 축소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비 유로존(EU 회원국 28개 국 중 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EU 규정의 선택적 적용 권한도 늘렸다. 캐머런 총리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모양새다.

캐머런 총리는 “앞으로 세부 사항에서 더 조율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면서도 “EU의 제안은 실질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에선 오는 6월 중 국민투표가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2017년 말 이전에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다.

합의 초안이 합의안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EU에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정도만 캐머런 총리의 우군이다. 독일은 “우리는 캐머런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럽의 가치를 완전히 저버리는 경우만 아니면 무엇이든 논의할 수 있다”(슈피겔)고 말한다.

하지만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비우호적이다. 영국 내 동유럽 이주자들이 차별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봐서다. 프랑스도 비 유로존 국가에 대한 과도한 보호 조치가 이뤄지는데 대해 떨떠름해하고 있다. 오는 18일부터 양일간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가 최종 담판장이 될 전망이다.

캐머런 총리로선 국내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장 보수당 내에서 EU회의론자를 달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장관은 BBC 기자에게 “엉망인 합의”라고 했다.

여론도 양분돼 있다. 일부 여론조사(유고브)에선 브렉시트 여론이 잔류 의견을 4%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최근 EU와 영국이 브렉시트 저지에 합의를 본다고 해도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이 EU에 잔류하는 데 찬성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영국은 노동당 정부 시절인 1975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잔류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잔류 찬성률은 67%였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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