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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지만 아쉬운 클린턴, 힘겨운 승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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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가 치러진 1일 10시30분(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지자 앞에 나타났다. 승리를 자신한 모습이었다. 빨간 상의에 바지 차림으로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딸 첼시와 연단에 오른 클린턴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목소리는 지난 나흘 동안 지켜 본 4번의 유세와는 비교가 안되게 힘이 실려있었다.

"믿을 수 없는 밤이며 믿을 수 없는 명예"라 말을 꺼낸 그는 10분 동안 주먹을 흔들며 "우리 함께 뭉쳐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공화당에 맞서자"고 외쳤다. 격전의 긴장이 컸던 때문인지 그는 '휴~'하고 웃으며 한숨을 쉬웠다. 그리곤 "내가 지금 이곳에 서서 큰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고마워요, 아이오와!"라 외쳤다.

하지만 클린턴의 연설이 끝난 뒤 상황은 급변했다. 밤 11시가 되면서 다시 격차가 0.2%포인트로 좁혀졌고 이후 97% 진행된 상황에서 개표가 거의 멈췄다. 1683개 투표소 중 90곳에서 투표요원이 제대로 코커스를 진행하지 못해 결과 전달이 지연됐기 때문이었다. 샌더스 상원의원 쪽에선 바로 재투표나 재검표가 필요하단 주장이 나왔다. 최종 결과는 49.9%대 49.5%였다. 박빙이긴 하지만 클린턴이 아이오와 승리를 거머쥔 배경으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조직력이다. 클린턴은 지난해 4월12일 출마 선언 이후 100번이 넘게 아이오와에서 유세하며 조직을 다졌다. 99개 카운티 전역에 자원봉사자를 키웠다. 이를 위해 940만 달러(110억원)의 선거자금을 쏟아 부었다. 샌더스의 740만 달러(89억원)보다 27% 많다. 2008년 당시에는 버락 오바마 후보에 900만 달러 대 720만 달러로 뒤졌지만 절치부심 8년 동안 공을 들인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둘째, '겸손 모드'다. 2007년 대선 출마 선언 당시 클린턴은 '나(I)'란 단어를 31번 썼는데 이번에는 2번뿐이었다. 대부분 '우리(We)'로 바뀌었다. ABC방송은 "클린턴은 2008년 아이오와 경선에선 대규모 유세장을 고집하고 영상으로 연결해 때우는 오만함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이오와 주민 100명이 모이는 곳도 마다 않고 발로 훑는 지상전을 고수한 게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2008년에 비해 '안티 힐러리'가 급속히 줄고 '후보 충성심'에서 우열이 가려졌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65세 이상 투표자로부터 45%의 지지를 받았던 클린턴은 이번에 무려 69%를 획득했다. 또 중·장년층인 45~64세로부터 28%였던 게 58%로 껑충 뛰었다. 선거전 막판 "이러다 샌더스가 이길 것 같다"란 여론이 확 퍼지면서 "우리가 나가서 힐러리를 지켜야 한다"는 '노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클린턴이 일단 어려운 첫 고비를 넘겼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당장 일반인도 참여 가능한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열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칫 '샌더스 열풍'이 거세질 수 있다.

디모인(아이오와주)=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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