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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뉴디지털실장
지난 주말 무슨 대회가 있어 아이와 함께 서울 대원외고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혼자 피식 웃었다. 화장실의 변기 물 내리는 밸브 바로 위에 ‘3초 안 누르면 3수’라는 무시무시한 손 글씨 안내문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내려 보낼 때까지 밸브를 꾸욱 누르지 않을 간 큰 학생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기 위한 이러저러한 가이드를 적어놓은 학생회 명의의 인쇄물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보다 효과적이었던 건 아마 이 손 글씨 안내문이 아니었을까. 수험생도 아니고 그저 하루 방문객인 나조차 힘 줘서 3초를 눌렀으니 말이다. 아무 근거 없는 말인 줄 다 알면서도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는, 인간 심리를 꿰뚫은 이 직관적인 문구에 감탄했다.
그리고 대외외고에 다녀온 다음 날 아침. 휴대전화로 페이스북(페북)을 열었더니 전날 그곳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여러 장의 아이 사진이 타임라인 맨 뒤에 쭉 떴다. 평소 사적인 사진을 SNS에 올리는 걸 극도로 꺼려왔지만 순간 무의식적으로 이 사진을 클릭해 페북에 공유할 뻔했다. 페북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식으로 내 숨겨진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페북을 하면서 항상 놀란다. 친구 찾기에서부터 내 관심사 보여주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그러나 내게 딱딱 맞는 정보를 어쩜 이리도 편리하게 대령하는지. 다 내가 알게 모르게 흘리고 다닌 정보들을 취합하고 재가공한 결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이용자가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활용하는 페북의 알고리즘은 물론 놀랍다. 하지만 늘 나를 놀라게 하는 건 기술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이해다. ‘삼수’라는 단어 하나로 3초의 행동을 이끌어낸 대원외고 학생들처럼 페북도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본다.
데이터의 대홍수 시대다. 분석하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지만 기술의 발전은 곧 이 간극마저 없앨 것이다. 설령 그런 시대가 된다 해도 결국 그 중심엔 인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숫자가 모든 걸 말하는 빅데이터 세상이라지만 이를 해석하고 실행에 옮기는 판단은 사람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수학과 출신인 데이터 과학자 크리스티안 루더도 저서 『빅데이터, 인간을 해석하다』에서 빅데이터를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숫자를 보고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가 뭔지를 아는 사람,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 인간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안혜리 뉴디지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