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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가담한 임원, 사내 징계도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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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한 시멘트 회사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들이닥쳤다. 이 회사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A씨는 조사관이 사무실로 올라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직원을 시켜 관련 서류를 여자화장실과 지하주차장에 숨겼다.

A씨는 다른 시멘트사 영업본부장과 담합을 해서 시멘트 공급가격을 과도하게 올린 혐의를 받고 있었다. A씨의 ‘꼼수’는 바로 공정위 조사관에게 들통났다. A씨의 혐의에 업무방해 행위가 더해졌다. 그런데 공정위 현장 조사가 있고 바로 한 달 후에 A씨는 계열사 사장으로 승진해 발령났다.

담합을 해서 공정위 조사와 제재를 받고도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임원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담합을 통해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주고 조사ㆍ처벌 과정에서 ‘희생’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 공정위가 담합에 가담한 임원에 대한 사내 제재를 의무화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31일 공정위는 이런 내용의 ‘2016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담합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담합 가담자가 승진 제한, 감봉 등 인사상 불이익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사내 제재 규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 같은 민간 기업의 경영 판단에 공정위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합 적발부터 조사, 제재까지 걸리는 기간은 3~4년 정도다. 사내 징계를 하려는 시점에 관련 임원이 이미 퇴직하는 사례가 많다는 부분도 한계로 꼽힌다.

한편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총수 일가 사익 편취) 같은 내부 거래 실태를 올해 상시 점검하기로 했다. 총수 일가가 갖고 있는 해외 계열사 현황도 의무적으로 공시하게 할 계획이다. 지난해 벌어진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계기가 됐다.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우회해 소유하는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따라 공정위는 공시 제도를 정비한다.

공정위는 기업 인수ㆍ합병(M&A)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단계에서부터 독과점 여부를 예비 검토하는 안도 추진한다.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 재편을 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또 호텔 비교 사이트 같은 온라인 플랫폼(O2O) 업체를 대상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가 없는지 점검한다.

공정위는 카페·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하는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사기 같은 피해를 입혔다면 포털사업자가 대신 구제 절차를 밟아주는 ‘관리 의무’ 조항도 신설한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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