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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생각 없이 사는 ‘ROM형 인간’, 배워 회사 주는 ‘RAM형 인간’, 시시콜콜 관심 ‘센서형 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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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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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을 그려낸 SF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컴퓨터 같은 인간은 우리 미래일까. [중앙포토]

초기의 컴퓨터는 에니악(ENIAC·미국에서 1946년 개발된 세계 최초 전자식 컴퓨터)처럼 거대한 공장건물 모습이었다. 그러던 컴퓨터가 이제는 손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처럼 작고 똑똑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세기도 안 걸렸다. 인간이 무려 200만 년 동안 원시인으로 살았던 것에 비하면 그 발전 속도는 놀랍다. 이 잘나가는 컴퓨터에 견주면 인간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인간을 가끔 컴퓨터에 비교해 분류하기도 한다.

 ‘ROM형 인간’이 있다. 전통적인 메모리인 ROM(Read Only Memory:고정기억장치)은 처음 제조 당시에 입력된 값을 그대로 읽기만 한다. 바꿀 수가 없다. ROM형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긴 본능대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다.

요즘엔 옛날과 달리 ROM도 다시 쓰기가 가능한 플래시 메모리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ROM형 인간은 다시 쓰기가 안 된다. 이런 분들에게 적합한 인터넷 농담이 있다. “이번 생은 틀렸어. 다시 태어나면 모를까.”

 RAM(Random Access Memory)은 전원이 켜져 있는 동안 기억하고, 쓰고, 읽을 수 있다. ‘RAM형 인간’도 생명이 켜져 있는 동안 그 비어 있는 메모리 공간에 배운 것을 채워 넣고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어 살아간다.

하지만 이 RAM형 인간의 메모리를 대부분 차지하는 것은 회사라는 운영체제(OS)다. ‘배워서 남 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준다. 메모리에 회사라는 운영체제를 빼고 내 프로그램을 채우고 싶지만 그러면 컴퓨터는 다운될 것이다.

 ‘클라우드형 인간’은 클라우드 컴퓨터의 특성처럼 구름 속에 둔 그 무엇인가로부터 모든 자원을 할당받아 세상을 살아간다. 종교적인 구세주일 수도 있고, 부모님이나 추앙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이 믿는 어떤 세상을 구할 이념일 수도 있다.

자신보다는 구름 속 그 무엇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로부터 부여받은 권한과 소명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관심 없다. 더미(Dummy)에 불과한 자신보다 오직 그분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간다(더미 컴퓨터는 자체 처리 능력이 없는 부속 단말기 같은 것이다).

 ‘센서형 인간’은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와 같다. 남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가서 누구랑 멋진 배경사진을 만들었는지 시시콜콜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인다. 항상 센서를 켠 상태로 늘 자신과 비교한다.

자신을 ‘사회적 기준’에 맞추며 낙오되지 않으려 애쓴다. 스마트폰의 위치센서·중력센서처럼 대학이름 센서, 아파트평수 센서가 있다. 늘 비교하다 보니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피곤하고, 지친 삶이다.

 컴퓨터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이큐(IQ)가 0인 기계이고, 컴퓨터용어 ‘GIGO’(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를 그대로 실행한다. 즉 시키는 대로 처리하는 기계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가끔 컴퓨터를 닮으려고 한다. 컴퓨터처럼 끊임없이 비교센서를 작동시키고, 자신이 아닌 남의 리소스에 의지하며, 단순 저장된 프로그램이나 본질이 아닌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인간이 지능은 높다고는 하나 참 이상한 동물이어서 가끔 비싼 트레드밀(실내 러닝기구)을 사다가 고급 거실 빨래 건조대로 사용하고, 수백만원짜리 컴퓨터를 인터넷 고스톱 기계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 스페이스 오디세이, 터미네이터 같은 SF 영화들은 미래를 대부분 우울하게 그렸다. 컴퓨터가 사람을 닮아 인공지능 인간이 되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컴퓨터가 사람을 닮아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컴퓨터처럼 되어 가는 것이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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