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대북 석유수출 금지 촉구…왕이 “제재가 목적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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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준비한 초강력 대북제재안이 중국의 벽에 부닥쳤다.

케리 “대북제재에 북?중 교역 포함”
왕이 “대화 통해 북핵 해결” 되풀이
“한국 사드 도입 땐 대가 치러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주장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이 중국 고위 당국자들과 담판을 벌였으나 중국은 종래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7일 케리 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제재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며 “새로운 제재가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거나 한반도를 혼란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며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을 긋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 ▶북한의 광물 자원 수입 금지 등 미국이 준비한 초강력 제재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이란에 대한 제재가 핵협상 타결로 이어졌음을 강조하며 중국의 대북 압박 동참을 촉구했다.

그는 “김정은의 행동은 경솔하고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수소폭탄을 터트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특별한 능력을 믿는다”며 “유엔의 대북제재 영역에 북·중 교역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은 “북한에 대한 강력 제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미·중이 합의했다”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왕 부장은 종전 입장을 반복했다. ▶한반도 비핵화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한반도의 평화 안정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한 중국의 3원칙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중국의 이런 입장은 희로애락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전 통보 없이 강행된 북한의 핵실험 직후 불쾌감을 표출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음을 강조한 발언으로 읽혔다.

케리 장관과 왕 부장의 회담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미·중 고위 당국자 간 회담이었다.

두 사람은 오전 중 회담을 끝내려던 예정과 달리 오찬을 함께하며 4시간 넘게 대화를 계속했다.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도 두 사람은 날을 세웠다.

왕 부장은 “중국의 입장에 대한 근거 없는 왜곡을 거부한다”고 했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케리 장관이 “중국의 대북정책은 실패작”이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들렸다.

케리 장관은 양제츠(楊潔?) 외교담당 국무장관을 만난 뒤 오후 늦게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예방하는 것으로 방중 일정을 끝냈다.

베이징 외교가의 소식통은 “1차 핵실험 때는 1주일, 2차 땐 2주, 3차 때는 3주 만에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됐는데 이번엔 4주가 지나도록 미·중 간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입장은 관영매체인 환구시보의 27일자 사설에서도 잘 드러났다.

환구시보는 “대북 석유 수출 금지 등으로 북한 민생에 타격을 주면 북한에 인도주의적 재난이 발생할 것이고 1000여㎞의 국경선을 접한 중국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며 “제재는 융단폭격식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만 국한하는) 정밀타격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향해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제를 한국이 도입한다면 한·중 관계에 엄중한 손해를 끼칠 것이며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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