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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가 바꾼 세상' 원양어선 선원 잘린 손가락 붙이기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남 진도군 관매도에 사는 김모(55·여)씨는 10여 년간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았다. 김씨는 그간 한 달에 한 번 배로 7시간 거리에 있는 목포시의 한 종합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목포로 가는 배편은 하루 한 번뿐. 병원에 가려면 1박2일 일정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혈압과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5월부터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김씨가 원격의료 시범사업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목포까지 나갈 필요 없이 동네 마을회관에 설치된 장비로 혈압과 혈당을 측정해 진도군에 있는 병원 의사에게 인터넷으로 전송하고 문자로 그 결과를 전송받았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땐 화상통화로 의사와 상담했다. 그 뒤 의사가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면 김씨는 지정 간호사를 통해 약을 받았다. 꾸준히 관리를 받은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다. 김씨는 ”병원 진료받으려면 이틀이 꼬박 걸렸는데 지금은 언제나 필요할 때 상담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도입된 원격의료 2차 시범사업 혜택을 본 환자들은 김씨처럼 도서벽지 11곳에 사는 주민을 포함해 군부대(50곳) 장병, 원양선박(6척) 선원, 교도소(30곳) 수감자, 노인요양시설(6곳) 환자 등 5300여명이다. 1차 시범사업은 2014년 이뤄졌다.

이 사업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보건복지부가 도서벽지 주민 24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83%가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88.9%였다.

환자들의 복약순응도(의사 처방에 따라 약을 챙겨먹는 정도)도 향상됐다. 시범사업 참여 전 4.83점(6점 만점)에서 참여 뒤 5.1점이 됐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건강상태도 나아졌다. 당뇨병 환자 239명을 상대로 시범 사업에 참여 전과 참여 후 3개월이 지난 뒤 당화혈색소(헤모글로빈에 포도당이 붙어있는 상태로 6.5%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 수치를 조사했더니 참여 전 평균 7.98%에서 3개월 뒤 7.35%로 수치가 줄었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원격의료는 공공의료를 확대하려는 취지“라며 ”의사의 손길이 닿기 힘든 도서벽지 등 의료 사각지대에 의료 혜택을 촘촘하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는 만성질환자에 대한 건강관리뿐 아니라 응급상황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원양어선인 사조포텐시아호 선원 윤모(53)씨는 지난해 7월 31일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조업을 하던 중 왼쪽 중지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동료 선원들은 배 안에 설치된 확대경 등 장비로 윤씨의 환부를 촬영해 부산대병원 해양원격의료센터로 전송했다. 센터에 근무중이던 의사는 전송된 자료를 바탕으로 응급처치를 지시했다. 김씨는 생리식염수로 손가락을 소독하고 마르지 않게 잘 감쌌다. 의사가 처방한 항생제도 복용했다. 윤씨는 중간 기착지인 피지에 내려 비행기로 귀국했고, 국내 병원에서 무사히 봉합 수술을 받았다.

최병관 부산대병원 해양원격진료센터장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잘린 부위가 감염되거나 괴사되지 않도록 처치를 잘한 덕분"이라며 "원양어선 선원들에게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원격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격의료의 이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의학적·기술적인 안전성 검증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복지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해 운영 내용과 참여 병원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원격의료에 따른 오진과 부작용, 해킹으로 인한 환자 정보 유출 가능성 등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의료접근성을 높이려면 원격의료를 도입할 게 아니라 의료취약지역에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 이송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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