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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 들고 오른 옥타곤걸 유승옥, 대본 들고 연극무대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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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유승옥'이라고 들어봤는지. "미국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이 명왕성에 접근했다는 소식에 모델 유승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라는 식으로 기사 말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승옥을 등장시키는 어법이 온라인에서 유행해서 생긴 용어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한 언론 어뷰징(abusing·오용)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며 황폐해진 미디어 환경을 꼬집곤 했다. 달리 보면 유승옥이란 인물이 대세라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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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승옥이 연극에 데뷔했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굿씨어터)에서 공연중인 '연애의 정석'이란 작품이다. 출연료는 고작(?) 회당 5만원이란다. 아무리 가난한 연극판이라도, 툭하면 '회당 수천 만원' 개런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연예계 물정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왜 굳이 연극일까.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지난 24일, 유승옥을 만났다. "저 완전 푼수데기에요"라는 말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 연극이라, 다소 의외다.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다. 연기자 되려고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아직 개봉은 안 했지만 영화도 이미 두 편 촬영했다. 작년에 UFC(미국 이종격투기대회) 옥타곤 걸로 참여하고 연극 출연 제의가 왔다. 뒤도 안 돌아보고 하겠다고 했다."
어떤 면에 끌렸나.
"여주인공이 인기 뮤지컬 스타였다가 불륜 시비에 휘말리며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명세를 치르다 보면 누구나 일순간 잊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있지 않나. 또 스타지만 겉모습과 달리 평범한 일상 생활이라는 컨셉트도 좋았다. 고민도 하고, 수다도 떨고, 술 먹고 객기도 부리고… 극중 배역의 그런 모습에 공감하면서 감정이 이입됐다."
막상 연기를 해보니 어떤가.
"너무 신난다. 힘이 쭉 빠져 있다가도 무대만 오르면 숨어있던 에너지가 막 용솟음친다고 할까. 방송은 그냥 나를 드러내면 되지만, 연기는 '내가 아닌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꼭꼭 숨겨져 있던 내 안의 모습이 폭발할 때면 그 희열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무대가 얼마나 기적 같은 공간인지 매일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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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판도 텃세가 만만치 않을 텐데.
"텃세? 이렇게 모자란 나를 그냥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정말 따뜻하게 대해 주신다. 나도 몰랐는데, 연출 선생님도 동료 배우도 처음엔 내 인상이 별로 안 좋았다고 하더라. 까칠하고 도도해 보였다고. 근데 지금은 가장 만만하다고 한다. 왜 그리 속이 없느냐고, 그래서 험한 연예계 바닥에서 살아갈 수 있느냐고. 내가 좀 그렇다. 푼수다. 히히."
회당 개런티가 5만원이라고 들었다.
"돈 보고 택한 거 아니다. 소극장 연극 열악하지 않나. 동료 배우들도 비슷한 액수다. 본래 제작사는 더 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외려 부담스럽다고 했다. 비록 방송 등에서 이름을 알렸지만 연기는 처음인데, 그렇다면 신인 연기자가 어떻게 기성 연기자보다 더 받겠는가. 똑같은 대우만 받아도 감사한 일이다."

유승옥의 유명세는 흥행에 큰 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연말엔 하루 3회 공연에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티켓을 구하기 위해 공연장 바깥으로 100m가량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유승옥은 당초 2월 말까지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3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어떻게 연예계 들어오게 됐나.
"충북 오송에서 자란 '촌년'이다. 겨울이면 논밭에서 썰매 탔다. 아버지는 우체부였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 6시10분에 일어나 6시35분에 출근하는, 100% 성실맨이셨다. 근데 외모 탓인지 중고생 때부터 심심치 않게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받은 명함을 집에 갖고 오면 부모님이 찢곤 했다. 감히 연기자 되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공주대 생물산업공학부에 진학했고, 교생 실습에 나갔다 지금 소속사 대표님이 학교로 찾아오셨다. 대표님이 부모님을 설득해 연예계 데뷔할 수 있었다."
글래머러스한 외모가 화제였다.
"4년 전만 해도 난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특히 굵은 허벅지가 싫었다. 학창시절 교복은 툭하면 터졌고, 청바지는 아예 엄두를 못냈다. 대학 3학년 때는 허벅지 지방 흡입 수술을 했다. 그래도 오디션만 보면 '덩치 있다'며 번번이 낙방했다. '이러다 안 되는 거 아니야'라는 자책도 적지 않았다. 그때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허벅지를 탓하지만 말고, 다른 매력을 돋보이게 하자고. 그때부터 식이요법과 운동에 열중했다. 하루 6시간씩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며 나만의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지금도 주변에 말한다. 약점에 움츠러들지 말고, 강점을 부각하라고."
지나치게 섹슈얼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 같지 않나.
"지난해 초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그때는 조급했다. 난 다른 면도 있는데 너무 한쪽으로만 인식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런 얘기 했다가 또 욕도 엄청 들었다. 섹시미가 걱정되면 왜 그렇게 훌러덩 벗고 나오냐고 해서(웃음). 지금은 인정하고 있다. 섹시한 면도 있는 게 나니깐. 그게 유승옥이니깐. 부정하기보다 받아들이고 한발 한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참이다. 그런 뜻에서 연극도 출연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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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유승옥'도 화제였다.
"진짜로 기자분에게 전화가 왔다. 미국 우주선이 명왕성에 가까이 갔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래서 신기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기사화가 됐고, 화제가 됐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웃고 말았는데, 일각에선 일부러 이슈화하려고 그랬다고들 했다. 오해다. 가십거리나 단세포적인 감각만으로 지속하기 어렵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향후 계획은.
"배우도 모델도 건강전도사도 병행하고 싶다. 물론 연기에선 완전 초보다. '발연기'라고 욕 먹어도 좋다. 겁나서 피하기 보단 한번 부딪혀보고 싶다. 지금은 비록 풋내기지만 훗날 '배우 유승옥'으로 평가받고 싶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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