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에 맞서려 현역 특혜 포기한 대구 비박·유승민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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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누리당 권은희(대구 북갑) 의원은 지난 21일 지역구인 복현오거리에 나가 처음으로 이름이 크게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출근길 유세를 벌였다. 이날은 대구 진박(眞朴) 예비후보 6명이 모여 경선 승리의 결의를 다졌던 ‘해장국집 회동’이 있었던 다음 날이었다.

권은희·김상훈·김희국 3명
예비후보 등록, 거리 유세 나서

권 의원이 피켓을 들고 나선 것은 해장국집 회동에 하춘수(전 대구은행장) 예비후보가 참석했다는 소식을 듣고 ‘뜨끔’해서다. 권 의원은 이날 당 색깔인 빨간색 점퍼를 입고 거리유세를 했다.

권 의원은 “내가 (진박 후보에게 밀려) 자진 사퇴할 거란 최근의 헛소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거리유세 등 예비후보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 현역 의원들이 ‘진박 공세’에 맞서기 위해 예비후보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25일 김상훈(서) 의원도 등록하면서 현역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경우는 김희국(중-남) 의원을 포함해 3명으로 늘었다. 모두 ‘비박’ 또는 ‘유승민계’로 불리는 의원이다.

김상훈 의원은 “진박·친박 논쟁 때문에 대구시민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진박을 찍으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 여론이 불거지고 있다”며 “공정한 상향식 공천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민들께 알려드리기 위해 예비후보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예비후보가 되면 의원으로서의 특혜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특히 지역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하는 게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현역 의원은 후보자 등록 시점까지 ‘현역 프리미엄’을 활용하는 게 당연시됐다.

하지만 대구에서만은 진박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당장 ‘거리유세’ 등 예비후보 활동이 더 중요해졌다. 25일까지 등록한 전국의 예비후보는 1115명이지만, 이 가운데 지역구 현역 의원은 30명 안팎일 것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보고 있다.

현역 프리미엄을 포기한 김희국 의원은 “지난 4년간 충분히 의원으로서 지역민을 만났으니 이제는 예비후보로서 거리유세를 하는 게 지지율을 높이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 선거구(중-남)의 진박 예비후보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예비후보 등록 전략에 대해 비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이미 진박들이 사실상 대구를 점령한 상태에서 지역 주민들로부터 현역 대접을 받기가 쉽지 않다”며 “예비후보로 활동하는 게 본인에게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대 엄기홍(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해장국집 회동’ 이후 ‘진박들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그동안 의정보고회 개최, 의정보고서 배포와 같은 특권을 다 활용했던 현역 의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는 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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