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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 반대하면 죽음?…의문사한 정적들

중앙일보

입력

2006년 영국에서 발생한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독살사건의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크렘린궁을 비판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인물들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비밀공작으로 악명 높았던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이다. 소련 해체 이후엔 FSB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푸틴 자신이 1980년대 동독에서 산업보안 업무를 맡았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정보기관 시절 그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진 게 없다. 하지만 냉전시절 암살·납치 등 각종 스파이 활동으로 유명했던 KGB에서 잔뼈가 굵었던 점을 감안하면 푸틴이 이 같은 공작과 무관치 않음은 알 수 있다.

푸틴이나 러시아 정부가 크렘린궁에 대항했다 사망한 인물들을 직접 살해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각종 정황과 간접 조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게 서방 정부와 언론들의 분석이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2006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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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리트비넨코(왼쪽)와 방사성 독극물이 들어간 홍차를 마신 뒤 병상의 리트비넨코

- 전 FSB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2006년 11월 FSB요원 2명과 차를 마시고 돌아온 뒤 쓰러져 약 3주 후 숨졌다. 그의 체내에선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 ‘폴로늄-210’이 다량 발견됐다. 리트비넨코의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2014년 영국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조사위는 “리트비넨코의 독살은 러시아 정부 소행이며, 푸틴 대통령이 독살 계획을 최종 승인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리트비넨코는 사망 전 영국 정보기관 MI6의 러시아 조직범죄 자문에 응해왔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정적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1999년 300명의 희생자를 낸 러시아 아파트 폭발 테러가 체첸 반군 소행이 아닌 FSB의 자작극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2006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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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폴리트콥스카야

- 노바야 가제트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이자 체첸 내전에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던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는 2006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 사건을 저지른 5명을 검거해 재판에 넘겼지만 암살을 지시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서방 언론들은 크렘린궁이 암살의 배후에 있으며 수사당국이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2009년에는 폴리트콥스카야의 법정 대리인이자 체첸 실종자 가족을 돕던 인권변호사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가 노바야 가제타의 다른 프리랜서 기자 아나스타샤 바부로바와 함께 총격을 받아 사망하기도 했다.

▶보리스 넴초프 (2015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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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넴초프

- 의문사한 푸틴 대통령의 정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보리스 넴초프 전 러시아 부총리다. 푸틴과 마찬가지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33살의 나이에 니즈니노브고로드주 주지사가 됐다.

97년엔 러시아 제1부총리에 올랐고, 옐친 사임 후 열린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른 뒤 한때 그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비판하면서 강력한 정적으로 떠올랐다.

넴초프는 지난해 2월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의 볼쇼이 모스코레츠키 다리에서 여자친구와 걷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 흰색 차를 탄 범인들은 6발의 총격을 가했고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명중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당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전쟁범죄를 폭로하는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으며, 하루 뒤에는 그가 주도하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범인 4명이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가족들은 암살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르게이 유센코프 (2003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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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유센코프

- 자유러시아당을 이끌며 푸틴 대통령 정부를 비판해 온 세르게이 유센코프는 2003년 4월 모스크바 교외 자택 근처에서 가슴에 여러 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를 비판했고 체첸과의 전쟁에도 반대했었다.

유센코프는 반 푸틴 행보를 보이다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뒤 사망한 러시아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가까운 인물이었다. 베레조프스키는 2013년 런던의 자택 욕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는데 러시아 정부가 암살한 뒤 자살로 위장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독살당한 전 FSB요원 리트비넨코는 자신이 베레조프스키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폭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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