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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레이건의 교훈, 대처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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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1972년부터 85년까지는 노조의 동의없이 영국을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했다. 어떤 정부도 노조의 파업에 저항조차 못했다. 광산노조의 파업에는 더욱 그랬다."

대처는 85년 자신이 노정(勞政) 관계를 역전시킨 것을 회상하고 있다. 강성으로 이름 높던 광산노조는 강경좌파 아서 스카길 위원장의 주도로 84년 봄부터 85년 봄까지 1년 동안 장기파업을 했다. 정부의 경제성 없는 탄광의 폐쇄에 반대하는 파업이다.

대처 정부는 광산노조의 파업을 불법적인 정치파업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파업 노조원들은 파업을 거부한 노조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테러와 위협을 가했다. 사상자도 생겼다.

경찰이 출근하는 광부들의 신변을 보호했다. 대처의 확고한 자세에 고무된 일부 노조원들이 노조의 불법파업을 법정에 제소해 여러 명의 파업주동자들이 구속되고 노조의 기금이 몰수됐다. 대처는 광부들의 파업이 화력발전소와 철강회사의 조업을 중단시키는 사태를 막았다. 광산노조는 파업 1년 만에 손을 들었다. 그것은 영국 노동운동의 성격을 바꾸고 영국병을 치유하는 혁명을 가져왔다.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불법파업에 대응하는 데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대처에 앞선다. 레이건이 취임한 81년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으로 미국의 공항들이 마비될 위기를 맞았다. 연방정부 공무원인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은 불법이다.

공교롭게도 항공관제사 노조는 80년 대선에서 미국 노조로서는 처음이요, 유일하게 레이건을 지지했다. 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미국의 노조는 민주당을 지지해 왔는데 항공관제사 노조가 그 오랜 전통을 깨고 공화당의 레이건을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레이건은 관제사들이 자신을 지지한 세력이라는 데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군용비행장의 관제사들을 동원하고, 자가용 비행기의 운항을 제한해 급한 불을 끄면서 48시간 안에 직장에 복귀하지 않는 관제사들은 해고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냈다. 관제사들은 레이건이 자기들을 해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만했다. 레이건은 48시간 뒤 1만1천5백명의 관제사들의 해고를 단행했다.

80년대 미국과 영국이 맞은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는 레이건과 대처의 용기와 원칙의 산물이었다. 파업이 허리케인처럼 한국을 휩쓸고 있는데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응은 레이건과 대처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무원칙하고 무책임하다. 원칙과 "법대로"는 말뿐이다. 노조가 사용자를 제쳐놓고 "정부 나오라!"고 외치면 경제부총리 이하 관계부처의 관리들과 청와대 비서관이 달려간다.

이러고도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내려가지 않으면 기적일 것이다. 어느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마음이 생길 것이며, 어느 국내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갈 충동을 느끼지 않을까. 정부가 노동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경제학자 김기환(金基桓) 박사의 말에 노무현 정부는 어떤 답변을 갖고 있는가.

한국의 경제.사회환경은 레이건의 미국이나 대처의 영국과는 다르다. 盧대통령은 레이건과 대처같이 자유경쟁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경쟁에서의 패자들을 배려하겠다는 사회적(Social) 자유주의자다. 그런 盧대통령에게 레이건과 대처의 노동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집단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정치파업을 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지지자와 반대자를 구별하지 않은 레이건의 신념과 용기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경제활동은 한국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盧대통령이 과도한 친노(親勞)의 인상을 씻지 않으면 외국기업들이 먼저 한국을 외면한다. 노동정책에서 노무현적 유연성이라는 것도 분명한 노동정책과 확고한 원칙을 전제로 해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