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하며 강해진 IBK기업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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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선수들은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실수한 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말이 금기인 팀이 있다. 프로배구 여자부 1위 IBK기업은행이다.

최근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2번 우승한 IBK기업은행은 개막 전 '1강'으로 꼽혔다. 전력 누수가 없는데다 토종 선수들이 막강해 트라이아웃제도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IBK기업은행은 전망과 달리 3라운드 중반까지 6승6패를 기록하며 중위권에서 맴돌았다. 시즌 직전 이정철 감독과 주요 선수들이 대표팀을 오가느라 피곤하고, 조직력을 다질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저조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기업은행의 저력이 발휘됐다.

지난 12월13일 흥국생명전 이후 8연승을 내달려 1위로 올라섰다. 김희진과 남지연은 "지난해도 슬로스타터였다. 올 시즌도 뒤로 갈수록 팀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다"고 입을 모았다.

IBK기업은행의 진짜 힘은 승리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승리 DNA'다. 남지연은 18일 현대건설전에 승리한 뒤 "우리 팀에는 '져도 괜찮아'라는 말이 없다. 대충 하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이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선수 맥마혼이 초반보다 많이 좋아진 건 감독님과 세터 (김)사니 언니가 늘 맥마혼에게 책임감을 지워준 덕분이다. 맥마혼도 주포로서 역할을 알고,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했다.

남지연은 "국내 선수들끼리도 서로에게 관대하지 않다. 실수를 하면 '언니, 이거 안 잡아줄거야', '왜 그래'라고 말한다. 배려하지 않고 독하게 대하면서 팀이 더 탄탄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정아는 "경기를 이겨도 기쁘지 않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 잘못된 점을 고치기 바쁘다"고 했다. 다소 삭막해 보여도 여과없이 동료의 실수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기업은행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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